(데스크칼럼)영구채 논란은 금융당국의 안일·불협·비겁함의 ‘산물’

입력 : 2012-11-13 오후 4:00:00
‘금융당국에 맞서지 마라’
 
은행업계의 불문율이다. 금융당국의 막강한 권력을 빗대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당국의 ‘힘’은 외국 금융당국보다 훨씬 강하다. 업계에서는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시어머니’로도 불릴 정도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권 문제는 권력을 쥔 금융당국의 ‘안일한 자만심’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의 부작용이다.
 
지난달 5일 5억달러(약 550억원) 규모로 발행한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 문제가 불거진 건 같은 달 말이었지만 이미 지난 4월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우선 금융당국의 ‘안일함’이 화를 키웠다.
증권사에는 지난 4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부터 영구채의 자본인정 여부와 관련한 문의들이 상당히 많았다. 당시 금융당국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화근’이었다.
 
결국 6개월 후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가 자본이냐 부채냐를 둔 논란이 확산되면서 탈이 나고 말았다. 시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고 늑장을 부리다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영구채를 발행하자 뒤늦게 제동을 걸고 나서는 이른바 ‘뒷북 행정’이 무엇인가를 그대로 보여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불협화음’은 영구채 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당초 금융감독원은 두산인프라코어 측에 ‘자본으로 분류할지 여부는 기업 자율로 판단할 문제’라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공식질의 회신이 아닌 실무진의 구두협의 형식이었다. 웃긴 모양새지만 어쨌든 자본으로 용인한 셈이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5일 ‘자본이 아닌 부채로 회계 처리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채무 변제 순위와 만기 영구성 등 세부 조건을 꼼꼼히 따져본 결과 자본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이었다. 시어머니가 둘인 것도 부담인데 둘이 말을 달리하니 시장은 혼란은 불 보듯 뻔했다.
 
시장을 관리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이 혼란을 부채질 한 꼴이다. 권력이 부딪히면 결국 시장 피해로 이어진다는 공식도 재확인됐다.
  
금융위원회의 ‘비겁함’도 빼 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금융위는 논란이 확산되자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에 대한 회계처리 문제는 법에 따라 회계기준원이 판단할 것”이라며 공을 회계기준원으로 넘겼다.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니 회계기준원을 방패삼아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자본시장이 급속히 발전하고, 금융상품도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업들의 영구채 발행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구채의 경우 재무상태가 우량하지 않은 기업이 영구채를 발행하면 재무제표 악화를 숨길 수 있어 투자자 피해도 우려된다. 은행이 지급보증 등 신용보강을 하기 때문에 은행의 건전성도 위협할 수 있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비자 보호’를 외치고 있는 금융당국이 확고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금융당국의 안일함과 불협화음 그리고 비겁함이 낳은 산물이 시장과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승국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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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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