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염현석기자]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에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며 황금빛 모래바람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리스크는 여전하지만 그만큼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이 된 것이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21일 '2012 세계에너지전망(2012 World Energy Outlook, 2012 WEO)'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의 전후 복구 사업 인프라가 완비되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 수출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라크는 지난 1980년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쿠웨이트 침공, 걸프전, 내전 등 30여년에 걸쳐 전쟁을 치르면서 산업시설은 물론 생활 인프라까지 황폐화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엄청난 자원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프라 구축과 신도시 개발, 원유 개발 사업 등에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면서 종전 후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글로벌 불황 속 이라크는 '新엘도라도'
종전 후 이라크의 대규모 인프라 구축 사업은 국내외 건설사들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건설사들은 물론 중공업들도 이라크의 전후 복구사업을 글로벌 경기불황의 탈출구로 생각하고 적극 참여했다.
한화건설,
SK(003600)건설,
현대중공업(009540) 등이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했지만 불안정한 대내외 여건으로 한화건설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은 중도 포기했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결단으로 사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때문에 이라크 인프라 구축 사업에 가장 큰 성과를 본 곳은 단연
한화(000880)다. 한화건설은 지난 5월30일 한국 해외건설 진출 역사상 최대규모인 80억달러의 바그다드 교외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 본계약 체결식
한화건설은 9월13일 이라크 정부로부터 우리 돈으로 9조원에 이르는 이라크 신도시 계약의 선수금 8700억원을 수령했다. 이번 수주로 한화건설은 올해 해외건설 수주 1위에 오르면서 중동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이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화건설의 연간 영업이익 규모가 1775억원에 불과했지만 이번 수주로 영업이익이 49% 이상 상승할 것"이라며 "한화의 기업가치 역시 20% 이상 동반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STX중공업 역시 지난 6월17일 900㎿의 디젤발전소 공사를 7개월 만에 완공하는 등 이라크 인프라 구축 사업에 참여해 '제2의 중동 특수' 대열에 가담했다.
유전자기술 전문기업 바이오니아도 지난 7일 이라크 과학기자재 전문기업 알무사입 브리지사로부터 90만달러 규모의 분자진단·유전자 연구용 장비와 해당 시약 키트류를 수주하는 등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동시에 양국 간 경제교류 규모도 급성장했다. 2년전만 해도 이라크 바그다드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지사는 단 한 곳도 없었지만, 올해 14개사가 지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양국간 무역액도 2010년 56억달러에서 지난해 106억달러로 두배 가까이 뛰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이라크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며 "이라크가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국내 건설업의 불황 탈출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원유 생산량 사우디 이어 '2위'..우리 기업은 여전히 '고민'만
특히 이라크는 세계 2위의 '원유' 매장국으로 오랜 기간 전쟁으로 미개발 지역이 여전히 많다. 압둘 카림 알 루아이비 이라크 석유장관은 "이라크 내 유전을 개발하려는 외국의 유전개발 회사들로부터 조달할 계획"이라며 해외자본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라크 석유수출공사(SOMO)는 지난 8월 하루 평균 256만5000배럴, 수출액 84억4200만달러(배럴당 106달러 기준, 한화 약 9조6000억원)를 기록하며 30년 만에 석유 수출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월 하루 평균 석유 수출량 251만6000배럴보다 약 2% 증가한 수준으로, 이라크 정부는 올해 말까지 하루 평균 산유량을 320만배럴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루아이비 이라크 석유장관도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을 향후 일일 1200만배럴 수준으로 늘리기 위해 1300억달러에서 1500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우선 2018년까지 하루에 900만배럴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이라크의 석유개발 사업은 엑손모빌, 셰브론 등 글로벌 메이저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자국 내 셰일가스 개발로 중동지역 석유 개발 투자를 줄이면서 이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다.
중국이 중동지역, 특히 이라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자국에서 1배럴당 석유 개발에 20달러 수준의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이라크에서는 3달러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본은 무기가 돼 이라크 석유를 노리게 됐다.
자원개발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중동에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이 우리가 들어갈 적기"라며 "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국내 자원개발 기업들이 적극 뛰어들고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라크는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며 "내부적으로 스터디는 진행되고 있지만, 고위험이 있는 만큼 일장일단이 있다. 아직 이라크 투자 계획은 없다"고 현 분위기를 전했다. 위험도를 감안해 진출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지역전문인력 육성 '절실'..결국 사람이다
석유개발 사업과 사회 인프라 건설 등 고수익이 예상되는 만큼 이라크는 고위험도 존재한다. 국내 정유업계의 진단과 망설임을 타박할 수 없는 주된 이유다.
이라크는 오랜 전쟁 탓에 외부세력에 대한 불신이 짙다. 여기에다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내부 정세 불안 또한 여전하다. 국내에 중동지역 전문가가 매우 드물다는 점도 기업들의 망설임에 한몫 담당하고 있다.
실제 중동 진출 관련해 기업들에 대한 자문은 거의 외국계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들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대형 로펌들도 그간 중동지역 진출을 시도했지만, 당시 기업들의 수요가 많지 않아 여러 번 포기한 적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들어 몇몇 국내 로펌들이 중동지역 전문 변호사를 육성하며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지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탓에 외국 메이저 로펌들과의 경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한 중동지역 전문 변호사는 "국내 중동 전문가는 대체로 이 지역 언어와 종교를 전공한 교수로 구성돼 있다"며 "중동지역 법률이나 경제상황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인력은 거의 전무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동지역 특성상 계약부터 법률적인 검토를 완벽히 하기 어렵다"며 "시공 중 불상사가 생겨도 변호사가 아닌 손해 규모를 파악해 주는 업체들을 통해 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이행되기 때문에 기업들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원삼 선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중동지역 전문가는 언어를 기본으로 다른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며 "당장 성과를 원하는 기업보다는 국가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연구센터 등을 설립해 아랍권 국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전문인력들이 계속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