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여의도 한복판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의정부역 흉기난동, 울산 슈퍼마켓 칼부림 사건. 최근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다.
묻지마 범죄는 아무 이유 없이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오된 사람들의 자포자기형 분노 범죄다. 자신의 경제적 조건이 하락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경제적 어려움, 고용 불안, 잦은 실업, 사회적 차별 등 불안정한 사회의 구조적 영향 속에 패자부활조차 불가능한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스토마토는 묻지마 범죄를 무조건 범죄로 여기기보다는 이를 양산하게 하는 사회적·경제적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고, 사회적으로 넘쳐나는 '화'를 유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분배 불평등지수를 보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분명히 개선됐다"
경제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수장의 말이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만 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소득분배를 보여주는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을 보면 2009년 이후 횡보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추세로 보면 악화됐다. 주변 곳곳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되레 심해졌다.
◇MB정부, 위기관리·무역 '합격'..가계부채·물가·소득분배 '미흡'
겉으로 봐서 우리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위기를 잘 이겨냈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생활은 더 척박해졌다. 지표가 이를 뒷받침 해 준다.
28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경제사회지표로 본 대한민국'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위기관리와 대외무역은 합격점을 받은 반면 가계부채와 물가관리·소득분배는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소득세제를 활용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려던 추세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에 따라 다소 정체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조세 지출 부담이 증가했고, 사실상 소득 재분배 기능도 무력화됐다는 평가다.
조정식 민주통합당 의원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MB정부의 하위계층인 소득 1분위의 월평균 경상조세 지출률은 2008년 2만6040원에서 2011년 4만338원으로 약 55% 급증했다.
반면, 현 정부 5년간 90조원에 가까운 부자 감세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인간의 기본권리인 의식주조차 버거워"
현 정부 들어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특히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난은 더 심해졌다. 식품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저소득층 가구의 엥겔계수는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엥겔계수는 소비지출 중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소득수준이 낮아지면 오르는 경향이 있어 가계 살림이 팍팍해졌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의 엥겔계수는 ▲2005년 20.70 ▲2006년 20.08 ▲2007년 20.16 ▲2008년 20.11 ▲2009년 19.98 ▲2010년 20.47 ▲2011년 20.70로 나타났다. 반면 상위 20%인 고소득층의 엥겔계수는 2005년 12.04%에서 지난해 11.83%로 낮아졌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악화됐다. 수치가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하다는 뜻이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이 국세청의 통합소득자료를 바탕으로 산정한 지니계수를 보면, 2007년 0.431에서 2008년 0.439, 2009년 0.440, 2010년 0.446으로 매년 증가했다.
양극화 정도를 파악하는 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을 보면, 소득계층 상위 20%와 하위 20% 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조정식 의원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5년간 평균 '소득 5분위 대비 소득 1분위 배율'은 5.19배였지만 MB정부 4년간은 6.01배로 확대됐다.
MB정부 5년 동안 수도권과 지방 간 주택가격의 양극화도 심화됐다.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현재까지 매매 변동률은 서울 -4.39%, 경기 -7.35%, 신도시 -14.26% 등 수도권 대부분 지역이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지방 5대 광역시 31.42% 등은 30% 넘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출범 초기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규제 완화에 주력했던 MB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기준 완화 ▲투기과열지구 해제 ▲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등 시장의 불확실성과 내성을 키우는 정책을 여러 차례 내놓은 탓이다.
부채 양극화도 더 심해졌다. 저금리 기조가 시작된 지난 4년 동안 최하층 가계의 이자 부담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소득 최상층에 비해 8배 이상 증가 속도가 빠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이자비용은 3만4580원으로 2008년 3분기보다 124.4% 늘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의 이자비용은 같은 기간 14.6% 느는데 그쳤다.
금융당국의 기준금리 인하 혜택이 신용도가 높은 고소득층에 집중된 데다 각종 서민금융 지원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소득계층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생활 불안에 대해 정부가 맞춤형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울 구룡마을에 거주하는 한 모(23세) 씨도 "돈이 돈을 버는 사회적 악순환을 정부가 끊어주면 좋겠다"면서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내려앉게 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