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바이오協 30년.."길을 열고 미래를 그리다!"

①한국바이오 발자취..10년주기 '혁명적 변화' 거듭

입력 : 2012-12-03 오전 10:14:44
[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바이오산업이 뿌리를 내린지 30년이 됐다. 1982년 유전공학연구조합과 유전공학학술협의회 출범은 한국 바이오산업의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는 관련 법제도의 정비, 연구개발·산업화 역량의 축적으로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 큰 발전을 이뤄왔다. 지난 2008년 11월, 바이오관련 3개 단체가 통합 출범하면서 국내 바이오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날 바이오는 생명, 건강 등 인류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그만큼 산업적, 경제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바이오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 자세가 필요하다. 출범 30년을 맞은 한국바이오 산업의 역사적 의미와 향후 전망을 두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
 
 
지난 1953년 미국의 20대 초반 젊은 과학자 제임스 왓슨은 DNA의 이중 선구조를 발견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그 구조를 이론적으로 규명한다. 이들은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생물체의 정보가 DNA에 포함돼 있다는 이 획기적 발견은 당시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한 금단의 영역이던 생명체 본질을 규명하려는 과학자들의 연구열에 불을 지피게 됐다. 오늘날 생명과학(바이오)의 발전을 가져온 시발점이다.
 
◇70년대 서구에서 관련학자들 귀국..'바이오산업 30년 발자취' 시작
 
'시작은 늦었지만 길은 열었다.'
 
우리나라에 생명공학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70년에 중반 이후 서구에서 관련 분야를 공부한 학자들이 귀국하면서 부터다. 이들이 신문,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서구 선진 국가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유전공학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해외 동향을 통해 유전공학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미래에 대해 앞다퉈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 1982년은 국내 생명공학의 역사가 시작되는 중요한 해였다. 지금의 한국바이오협회 모태인 한국유전공학학술협의회가 출범한 것이다. 이어 '유전공학육성법'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생명공학은 마침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완규 한국바이오협회 명예회장은 "협의회가 이룬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은 연구조합과 협의해 만든 '유전공학육성법"이라며 "1984년 1월에 시행된 이 법이 없었다면 오늘의 생명공학 발전은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80년~2000년대, 10년 주기로 혁명적 변화
 
우리나라 바이오 발전과정은 80년대의 초기 산업화 과정, 90년대의 연구개발 기반 확충과 산업화의 활성화, 2000년대 바이오벤처 중심의 산업 확산 등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생명공학은 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과학기술처 중심의 정부 생명 공학 연구개발 지원사업은 산업계와 학계가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돼,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생명공학 산업화가 이뤄졌다.
 
학계 또한 산업화 중심의 공동 연구개발 과제들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꾸준히 축적했다.
 
1990년대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세계 생명공학계가 인간의 유전자 정보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막대한 투자규모 때문에 게놈 연구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대신 꾸준히 확대된 유전공학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과 그 지원 방식의 다변화를 통해 연구개발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다.
 
정부 연구소 중심으로 연구비 투자가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약했던 문교부의 유전공학 분야에 대한 대학연구개발 지원이 크게 늘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유전공학관련 기초 학문의 연구도 큰 진전을 보였다.
 
2000년대 초 미국을 비롯한 생명공학 선진 국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벤처 붐이 바이오기술(BT)로 확산되고 '바이오벤처 붐'이 일기 시작했다.
 
배경은 달랐지만 이 같은 추세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1998년 들어선 새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 벤처에 대한 투자 지원에 앞장선 것이다.
 
또 대학과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전문 지식과 기술로 연구 경험을 필요하는 바이오벤처 창업으로 몰리면서 우리나라 생명공학은 이전까지의 제약, 식품산업체 중심에서 바이오벤처의 시대로 진화했다.
 
이상섭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는 "1980년대 초 유전공학산업은 책상물림 정도였다. 기업도 모르고 들어왔다가 몇년 지나 성과가 없으니 철수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정부는 살기 위해 바이오벤처를 육성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벤처기업', 바이오 중심에 서다
 
2000년 '새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면서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와 육성에 정부가 적극 나섰다. 외환외기로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는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가 벤처산업 육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2000년 중반 들면서 설립 붐을 맞은 바이오 벤처들 간에는 이미 네트워킹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당시 100여개 실험실 벤처기업들이 모인 렙벤처협의회가 벤처기업협회 주도로 결성돼 본격 활동에 돌입했다.
 
또 국내 80여개 바이오벤처를 회원사로 하는 한국바이오벤처가 출범했다. 벤처기업협회에서 독립한 렙벤처협의회(회장 서정선)와 기존의 한국바이오벤처기업협의회(회장 정명준)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학연과 지연으로 나뉘었던 바이오관련 협의나 모임들이 대부분 참여한 한국바이오벤처는 국내 바이오 벤처의 대표 단체로 자리매김됐다.
 
이어 한국바이오연구조합(전 유전공학연구조합), 한국바이오산업협회(전 한국생물산업협회), 한국바이오벤처협회가 지난 2008년 11월 통합해 지금의 한국바이오협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국내 바이오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많은 성과를 거뒀고, 이제는 세계의 과학 선진국들과 나란히 경쟁하는 수준에 올랐다"며 "지난 수십년 간 다진 IT 정보산업의 바탕 위에 이제 바이오 시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 농업, 환경, 에너지 분야의 눈부신 혁신을 통해 삶은 크게 변화할 것이며 인류는 3년~5년내에 바이오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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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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