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중매결혼과 M&A..KAI 매각과정 관전기

입력 : 2012-12-03 오후 4:17:01
"나는 요즘 고민이 많다. 갑자기 결혼이라니. 은퇴 전에 성례를 시키겠다 결심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두 명의 남자와 맞선을 봤고, 한달 안에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불호령에 죽을 맛이다.
 
두 사람 모두 외모는 밉지 않은 수준이고 직업도 번듯하긴 하나, 한 명은 선을 수십 번도 더 본 '단골 맞선남'이라 내게 진정 관심이 있는지조차 모르겠고, 다른 한 명은 까칠한 성격에 이리저리 나를 저울질하는 '밀당남'이라 피곤하기 짝이 없다.
 
나의 맞선 소문은 이미 집안에 파다하게 퍼져, 친척들은 자기들끼리 열심히 입방아를 찧고 있다. 얼마 전까지 밀당남과 결혼하라고 하더니 지금은 또 단골 맞선남이 더 낫단다. 밀당남과 결혼하면 고향 사천을 떠나 친구 하나 없는 부산에서 신접살림을 해야 하는데, 그건 좋지 않다나 뭐라나.
 
어쩌면, 이번 일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언니와 오빠는 굳이 나를 빨리 시집 보내려는 아빠를 이해 못하겠다며 내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 답답하다. 정작 결혼을 하는 사람은 난데, 왜 내 이야기는 제대로 안 듣는 걸까."
 
이쯤에서 등장인물을 소개하자. 강요된 결혼을 앞둔 여성은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 단골 맞선남은 현대중공업(009540), 밀당남은 대한항공(003490)이다.
 
KAI는 1999년 10월1일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등 3사의 항공 관련 부문을 통합해 설립된 공기업으로, 설립 이후 지금까지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작업체다.  전투기 KF-16, 한국 자체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등이 KAI의 작품이다.
 
MB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자금 마련의 일환으로, 한국정책금융공사는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두산으로 구성된 KAI 주주협의회 보유지분 56.41% 중 41.75%를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매각하기로 하고 지난 8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공고를 냈다. 이에 최종적으로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말도 많고 속셈도 다른 가족들은 인수전 당사자들을 둘러싼 외부세력들을 빗댄 것이다.
아버지는 MB정부(또는 한국정책금융공사), 언니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오빠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끝으로 친척들은 정치권 인사들과 경남 사천지역 주민들이다.
 
당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본입찰이 지난달 30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지난 2일 정책금융공사는 입찰을 이달 17일로 연기했다. 두 후보업체가 KAI에 대한 예비실사 기간을 2주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매각을 반대하는 KAI노조가 현장실사를 막아 실사가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을 보면, 현대중공업보다 인수에 더 적극적인 대한항공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되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중공업은 굵직굵직한 M&A들에서 완주하기 보다는 치고 빠지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번 입찰에서도 막판에 가까스로 참여해 유찰을 막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냐는 해석이 많았다.
 
대한항공은 꾸준히 KAI 인수에 관심을 보여왔지만 가격흥정에 더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1999년에 KAI가 설립될 때 국내 방산사업은 참여하지 않고 민수사업만 영위한다며 KAI 인수에 참여하지 않았다.
 
2003년에 대우종합기계의 KAI 지분(2596만주, 지분 28.1%)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납입을 앞두고 액면가인 5000원(인수금액 약 1300억원)이 고평가됐다고 주장하며 당시 거래를 무산시킨 바 있다. 2005년과 2009년에도 인수 의지는 보였으나 모두 헐값으로 사들이겠다고 덤벼들었다 실패했다.
 
대상 기업의 가치평가는 인수 추진 기업의 몫이고 되도록 더 싼 값에 사려는 게 당연하겠지만 서로 다른 두 회사를 하나로 융화시키는 그 복잡다단한 과정이 돈의 잣대만으로 추진되어서는 힘들다.
 
이번 입찰 지연의 원인으로 꼽힌 KAI 노조측의 반대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한항공이 이번 인수를 진행하면서 대상 회사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 미숙했기 때문인 듯하다.
 
KAI는 2000년대 초반 무려 1000여명을 구조조정해 회사에서 내보내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임금을 동결하는 고강도 체질개선을 통해 지금의 알짜기업을 만들었다. 이런 소중한 일터를 매번 "적정가보다 비싸면 안 사겠다"고 저울질 하면서 헐값에 인수하려 하니, KAI직원들이 "죽 쒀서 개주는 꼴"이라는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한항공의 역사도 KAI와 꽤 비슷하다는 점이다. 1969년 한진상사는 부실덩어리 국영기업인 대한항공공사를 14억5300만원에 인수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항공기 8대에 전체 좌석수가 400석도 안 되는, 동남아시아 11개 항공사 중 꼴찌 항공사다. 지금 대한항공은 전세계 항공사 중 12위, 항공기 147대(2012년 7월말 기준)를 보유한 매출 12조2671억원의 항공사로 성장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환골탈태한 KAL의 40년 역사를 돌이켜볼 때 KAI가 밟아온 지난 10년간의 고된 여정을 다독거릴 법도 하지만 M&A의 냉철한 경제논리는 또 그와는 별개인가 싶다.
 
대선 전에 결론이 날 것 같던 KAI 매각은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대한항공이 인수할 경우 지금 사천에 있는 KAI가 부산으로 이전될 것을 염려하는 경남 사천시의 반감이 강한 데다가 두 대선주자도 대한항공 인수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알짜 공기업의 민영화 매각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결정은 새 정부로 넘어갈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가운데 각자 다른 잇속과 뒤숭숭한 마음이 뒤엉킨 KAI 인수전은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김종화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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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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