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정책검증)②경제개혁, '면피성 공약' 對 '돌직구'

(특별기획)경제민주화..朴 '현상유지', 文 '구조개혁'
박근혜 '진정성'·문재인 '실현 가능성' 의문

입력 : 2012-12-04 오후 3:11:26
[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기자]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는 가히 '경제민주화 대선'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벌개혁 이슈가 선거판 전면에 등장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선거 레이스 초반부터 국내 재벌개혁 담론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김종인 의원을 영입하며 관련 이슈를 선점해나갔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또한 지난 노무현 정권의 과오를 반성하며 강도 높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었다.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여지던 두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대선이 다가오면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변하기 시작한 건 박근혜 후보 쪽이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박 후보는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경제민주화 공약들의 수위를 대폭 완화했다. 
 
 
 
최근 증권업계 등의 분석에 따르면 박 후보가 발표한 경제민주화 공약이 실제로 실현된다고 해도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기존의 주요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무풍지대’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방향선회는 법안 처리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5개 주제의 법안을 내놨지만 현재까지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후보는 대선 이전에라도 법안처리를 주장한 반면, 박 후보는 대다수 법안에 사실상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아울러 박근혜 진영 내에서 새누리당의 전향적 행보를 이끌던 김종인 의원 입지가 급격히 좁아지며 선거를 앞두고 캠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는 대신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는 비판적 여론이 많다. 재계를 비롯해 주요 대기업들 또한 마찬가지로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순환출자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 주요 공약에 따른 막대한 비용뿐만 아니라 규제 형평성 차원에서도 혼선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비교표
 
◇박근혜식이면?..‘삼성-현대차 등 현상유지’
 
박근혜 후보의 주요 경제민주화 공약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부당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강화 등으로 압축된다. 당초 새누리당이 강조해온 혁신적인 재벌 지배구조 개선안과 비교하면 '후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초부터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에 부정적 뉘앙스를 나타내온 박 후보는 결국 출총제를 최종공약에서 제외시켰다. 한 기업이 순자산의 일정비율을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출총제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한 제도다. 박 후보는 2009년 폐지된 출총제를 다시 부활시킬 경우 대기업의 투자동력을 떨어뜨린다며 반대의 근거를 밝혔다.
 
최대 격전지로 부상한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문제에 대해서도 신규 출자만 금지하고 기존의 순환출자구조는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반해 신규출자 전면 금지,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3년 내 해소를 주장하는 민주당 측에서는 이런 점을 들어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의 가면을 벗고 '민낯'을 드러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박 후보의 공약대로 기존 출자구조를 유지한 상태로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할 경우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주요 재벌 대기업들은 향후 신규 투자에 있어 순환출자 구조를 피해 투자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된다.
 
금산분리 방안 또한 이렇다 할 제재효과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금융 및 보험 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 한도를 기존 15%에서 1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재계 1위 삼성그룹을 비롯해 현대차그룹 등은 특별한 해소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이 최대주주로 지배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대해 행사하는 7.5% 지분율에는 전혀 제동을 걸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달 8일 열린 '박근혜 대선후보 초청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좌측부터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박근혜 후보,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사진=대한상의)
 
한편 김종인 의원이 박 후보 캠프에서 입지가 큰 폭으로 축소된 이후 측근으로 분류되는 국가미래연구원장 출신의 김광두 의원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박 후보의 경제정책을 가늠할 주요 변수다.
 
김광두 의원은 그동안 '줄푸세'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국가경제에서 재벌 대기업이 기여하는 효용성과 장점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결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성장 후분배론'을 답습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기존의 경제력 집중 현상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박 후보의 공약들은 본질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근혜 후보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재벌개혁’은 이미 지난 정권을 통해 실효성이 없다는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박 후보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공약의 문제는 진정성이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부분”이라며 “일례로 재벌 총수의 불법행위 처벌 강화는 이미 여러달 전에 경실모가 법안을 제출한 바 있지만 결국 박 후보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은 박 후보가 재계의 눈초리를 의식한 결과”라며 “김종인 의원이 실천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2개 법안이라도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결국 반려된 걸 보면 사실상 실천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재계측에서는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기업들에게 일정 부분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나마 합리적인 수준의 개혁안이라는 평가다. 박 후보가 내세운 총수사면권,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은 이미 정치권에서도 충분히 논의가 된 사안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법안 통과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文, '진정성·개혁의지' 뚜렷..'실현 가능성'이 관건
 
"문제는 '기업'이 아니고 '재벌'이다."
 
지난달 15일 문재인 후보는 경제5단체 중 하나인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400여명의 기업인 앞에서 일침을 놓았다. 문 후보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새로운 기업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다"며 "반칙과 특권으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지의 심장 한복판에 개혁의 칼날을 들고 들어선 것이다.
 
이같은 문 후보의 적극적인 행보는 정계와 학계로부터 경제민주화 실현에 대해 '의지'와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문 후보의 공약은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구조적 접근이 이뤄진 것"이라며 "당의 축적된 정책 역량이 반영돼 진정성 있고 실천 의지 역시 매우 강하다"고 평가했다.
 
문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모두 6개 범주, 23여개의 공약을 제시했다. 그 중 박 후보와 가장 큰 차이를 내세우는 부분은 '공평과 정의를 위한 재벌개혁' 분야였다. 문 후보는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해 신규는 물론 기존의 순환출자 역시 그 고리를 끊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긴 했지만 미이행시 해당 출자분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하는 박근혜 후보에 견줘 강도가 높았다.
 
또 박 후보가 강력하게 반대해온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의 부활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기존의 추진 입장을 견지했다. 공기업을 제외한 10대 대기업 집단에 한해 순자산의 30%까지 출총제를 재도입한다는 입장이다. 이밖에도 금산분리와 관련해 금융 및 보험 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 한도를 15% 에서 5%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후보가 10%를 내걸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문 후보는 보다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지난 10월 대한상의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연설을 마친 문재인 후보가 기업인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대한상의)
 
하지만 문 후보가 발표한 '재벌개혁' 법안에 대한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문 후보는 개혁의지는 분명히 있다"며 "하지만 제도로 개혁하는 게 쉽다면 경제민주화 법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민주화 공약은 실현 가능성과 사회에서의 시스템 적응성까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계 역시 문 후보의 공약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출총제 부활' 공약에 반발 여론이 거세다. 상한선을 초과하는 모든 출자를 전면금지하는 식의 출총제는 이론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기업의 신규 사업 자체를 획일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에 발이 묶인다는 것이다.
 
국내 10대 기업 중 하나인 S그룹 관계자는 "출총제의 경우 초기 시험단계부터 획일적 규제가 어렵다는 본질적 문제점으로 수많은 예외 조항을 끼고 있었다"며 "결국 출총제가 다시 부활한다고 해도 산업여건에 따라 지속적으로 예외조항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또 다시 형평성 논란을 낳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의 반대 여론은 출총제 부활과 순환출자금지 방안이 대기업에게 가져올 막대한 비용과도 연관이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출총제가 부활해 출자한도가 30%로 적용될 시 관련 대기업 세 곳은 최소 1조원에서 많게는 약 2조원의 해소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또 10대 재벌그룹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갖는 7개 그룹이 순환출자를 해소비용으로 모두 9조3000억원을 소요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도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난달 대한상의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국상공인과의 대화'에서 기업인들은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을 들으며 비판적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기업인은 "균형적인 성장,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기업과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으나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강화돼선 안된다"며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대기업의 성장이 위축되면 우리 같은 중소 협력업체들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문 후보의 공약은 경제계는 물론이고 여당의 반발에 둘러쌓여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여대야소인 상황에서 출총제 부활같은 민감한 법안은 통과되기 힘들 것"이라며 "출총제같은 민감한 법안보다 쉽고 중요한 공약부터 실천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계·시민단체 “두 후보 낡은 이념대결 양상 벗어나야”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실현 가능성 차원을 떠나 대통령 후보가 경제민주화가 지니는 '시대적 함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로 치환된다. 다시 말해 각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그들이 지닌 '경제관'도 명증하게 드러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번 19대 대선에서 두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 대결이 ‘낡은 이념대결’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지난 1980년대 당시 대두됐던 재벌개혁 열풍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겠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면밀히 살펴보면, 여전히 '성장 아니면 분배'라는 이분법적 수준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두 명의 대선후보 모두 경제민주화가 오늘날 한국경제에 함의하는 부분을 정책 공약에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성장과 분배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 구조 확립은 한국 경제의 앞으로의 100년을 책임질 중요한 문제인 만큼,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경제민주화에 앞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경제정책의 민주화인데, 그 과정이 결여돼 있다"며 "통상정책, 노동정책 등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성을 확보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제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특정 기업에 대한 징벌적 규제나 시장 환경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장과 분배의 개념을 바로 잡아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학계의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서는 문 후보와 박 후보 모두 좋은 평가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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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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