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토빈세 도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100원이 붕괴된 이후에도 환율이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해외 투기성 자금(핫머니)유입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국내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이를 규제해 금융시장의 안전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토빈세 도입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클 수 있다며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단계 토빈세'법 발의..학계도 "도입 필요"
5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 26명이 '토빈세법(외국환거래세법)'을 발의했고 각 대선 후보 진영에서도 토빈세 도입에 대한 입장 표명이 이어지고 있다.
토빈세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James Tobin) 예일대 교수가 제안한 것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해 급격한 자금 유출입에 따른 통화위기를 막기 위한 규제다.
민 의원 등이 발의한 외국환거래세법은 평상시 외환거래에 대해서는 0.02%, 위기시에는 10~30%의 세금을 부과하는 '2단계 토빈세' 형태다. 환율 변동폭이 3%를 초과하는 경우를 '위기'로 정해 3%를 넘은 시점부터 토빈세를 일별로 적용하고 3%를 하회할 경우 다시 해제하는 방식이다.
의원들은 "토빈세는 외환위기가 발생할 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던 방안"이라며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불안정이 과도한 구조조정과 일자리 불안, 높은 실업률과 내수침체 등과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토빈세는 경제적 안정을 위한 민생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연구기관에서도 토빈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홍범교 한국조세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기존의 환율 규제 '3종 세트(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만으로는 외국 자본을 규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 본부장은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2단계 토빈세를 시행하면 투자 감소에 대한 우려도 적고 환율 급변도 막을 수 있다"며 "국제통화기금(IMF)도 비상시 자본통제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자본자유화에도 역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도 "토빈세 도입은 단기적으로 투기 자본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도 토빈세 도입을 고려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럽연합(EU) 11개국은 토빈세 도입을 찬성했고, EU집행위원회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이미 토빈세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고 브라질은 자국의 증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6%의 외환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다.
◇섣불리 도입했다간 국제 금융계 '왕따' 될 수도
그러나 국제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토빈세를 도입할 경우 국제 자본이 한국 시장에 투자를 꺼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런 이유로 토빈세 도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금융거래가 상당히 위축될 수도 있고 갑자기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어 토빈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토빈세 도입으로 거래가 위축되면 작은 충격에도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해 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토빈세가 환율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브라질의 경우 외환거래세를 도입한 이후 헤알화 절상을 방지하는 데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연구 자료도 있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 유입된 외국 자금이 모두 투기성 자금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 자금의 평균 보유기간이 국내 금융기관보다도 3배 가량 길다는 것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 자금이 모두 단기 투기자금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