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회에 이어 MB정부 2인자마저 文 지지

입력 : 2012-12-11 오후 3:02:25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정운찬 전 총리가 11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인 그는 현 정부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국무총리에 올랐던 거물이다. 17대 대선에서 당시 여권의 영입후보로 거론됐던 그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깜짝 발탁되자 친박계는 들썩였다. 박근혜의 대항마로 이 대통령이 낙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등장부터가 박근혜 후보로서는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2009년 9월 총리에 오른 그는 세종시 수정에 명운을 걸었다. 충청권 출신으로 충청민심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에게 야권의 육탄저지보다 더한 걸림돌은 박근혜 의원이었다. 박 의원의 한마디에 50여명의 당내 친박계 의원들은 결사항전의 태세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갖은 막말을 주고받으며 계파갈등의 끝을 보였다. 박 후보가 강조하는 원칙과 신뢰, 여당내의 야당 이미지 또한 이때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차기를 노리는 박 후보로서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권에 확실한 입지를 굳힌 계기가 됐다.
 
결국 이듬해 8월 세종시 수정안이 야당과 친박계의 공조 속에 부결되자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박 후보와는 자연스레 감정적 앙금이 남게 됐다. 이후 그는 또 다시 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 직속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를 맡는다.
 
초과이익 공유제 카드를 꺼내들면 한바탕 정치권과 재계를 발칵 뒤집힌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를 주장하며 재계에 맞서기도 했다. 또 동반성장 지수 공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등 상생을 기본으로 하는 제도 마련에 힘썼으나 기득권의 비토 아래 유야무야됐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주무부처에서 먼저 제동을 걸었고, 이 대통령마저 냉정히 등을 돌리면서 그는 힘을 잃었다. 결국 그는 지난 3월 이 대통령의 의지 부재를 강하게 질타하며 동반성장위원회를 떠났다. 사실상 MB와의 결별이었다.
 
이후 4.11 총선과 18대 대선 출마를 검토하기도 했던 그는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의 연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함에 따라 그는 결국 문재인 후보로 돌아섰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정 전 총리는 지난 9일에 이어 이날 오전 문 후보와 면담한 뒤 지지를 최종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자신의 입장을 담은 지지문에서 “지난 수개월 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에 힘써왔다”며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느껴 동반성장에 관해 뜻을 같이 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과 (이번 대선에서) 협력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읽어보고 또한 직접 만나보니 나와 동반성장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재벌의 구름층이 짙게 드리워진 한국경제의 지금 모습으로는 창의력 있고 열정 있는 중소기업들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경제 생태계를 선순환 체계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은 동반성장밖에 없다고 문 후보와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날 문 후보 지지에는 정 전 총리 외에 이수성, 고건 등 역대 총리 3인이 포함됐다. 우상호 민주당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개혁적 보수 촐리 세 분이 문 후보를 지지해 주셨다"며 "국민연대의 화룡점정"이라고 자평했다.
 
또 이에 앞서 전날인 10일 MB정부를 탄생시킨 6인회의 멤버인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 또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역사의 후퇴”라며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상도동계(YS) 좌장이었던 그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함께 6인회 일원으로 참여하며 MB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선 바 있다.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과 방통대군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 등이 당시 6인회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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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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