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주유소..양극화 심화가 '주범'

가격 경쟁서 뒤쳐진 동네 소형 자영주유소 휴·폐업 잇따라
휴업 415개·폐업 235개..월 평균 50여 곳 영업중지

입력 : 2013-01-10 오후 7:28:23
[뉴스토마토 염현석기자] 주유소간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주유업게 경영난의 주범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유소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기업형 주유소와의 경쟁에서 뒤쳐진 동네 소형 자영 주유소들의 폐·휴업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10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폐업 주유소는 235개, 휴업 주유소는 415개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각각 23%, 7% 늘었다. 월별 휴·폐업 숫자도 지난해 6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전국적으로 월평균 50여곳의 주유소가 휴·폐업 등으로 영업을 중지한 상태다. 
 
◇서울시 장지동의 폐업 주유소 모습
 
◇기업형 아닌 소형 자영 주유소 휴·폐업 잇따라
 
문제는 대부분 폐·휴업 주유소가 소형 자영 주유소란 점이다.
 
주유소 협회 관계자는 "휴·폐업하는 주유소들의 대부분은 주유소를 1~2곳 정도만 운영하는 자영주유소가 많다"며 "6~7곳 가량의 주유소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은 '박리다매'로 매출을 올리고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주유소 업계와 협회 등이 기름의 '박리다매'를 강조하는 이유는 주유소들의 상상 이하의 영업이익률 때문이다.
 
주유소협회는 지난 2011년 전국 주유소들의 영업이익률은 0.6%, 2012년 잠정 영업이익률은 0.5%라고 밝혔다.
 
특히, 올해는 국제유가가 지난해보다 더욱 하락할 것으로 보여 지난해 영업이익률 0.5%보다 낮은 이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휴·폐업하는 주유소들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영업이익률 폭락의 주된 원인으로는 '주유소 간 거리제한' 정책 폐지를 꼽았다. 이 정책은 지난 1991년 폐지된 것으로 특정 주유소 반경 5㎞ 이내에는 다른 주유소가 문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주유소간 거리제한 정책 폐지 이유에 대해 '88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정부는 주유소 간 경쟁을 일으켜 기름값을 낮췄야 했고, 분단국가인 국내 사정상 전시 상황에서 주유를 원활히 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주유소를 늘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주유소 간 거리제한 폐지 결과 지난 1991년 이후 주유소 규모는 2배 이상 급증했다. 기존 주유소 운영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주유소를 가까운 거리에 추가로 세웠고, 신규 사업자들은 진입 장벽이 낮아져 무분별하게 주유소를 설립했다.
 
◇서울시 헌릉로에 위치한 알뜰 주유소
 
서울시 강남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사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유소가 많이 늘어나더라도 차량도 같이 늘어 영업이 잘되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기름 가격이 리터(ℓ)당 2500원 하던 때를 기점으로 수익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는 고유가를 기록하며 서울지역 국내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2500원에 육박했다. 당시 정부가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내리면서 다소 진정됐으나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공급가격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여전히 넘는 고유가로 인해 내리지 않아 주유소들은 이때부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고 업계는 진단했다.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주유소들은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기름을 팔아야만 했다. 하지만 주위의 다른 주유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결국 자본이 충분치 않은 주유소들을 중심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익성 악화 주유소, 가짜석유 판매 등 폐단
 
여기에 지난해 정부가 알뜰주유소·석유전자상거래 등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주유소 간 가격경쟁을 또 한번 부추겼다.
 
주유소 간 가격경쟁은 '치킨게임' 양상을 띄며 기름값을 실제 ℓ당 30원가량 낮췄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기름을 제공받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진 주유소들이 유사석유(가짜석유)를 판매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자본금이 충분치 않아 지속해 가격 경쟁력을 펼칠 수 없는 주유소를 중심으로 가짜석유 판매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대표적인 주유소 밀집 지역을 꼽히고 있는 송파대로와 성남대로 주변에서는 지난 2년간 2곳의 주유소가 가짜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돼 휴·폐업 상태다.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Nc-oil 주유소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된 곳 중 한 곳은 Nc-OIL 주유소로, 이곳은 농협 계열사인 남해화학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Nc-OIL 주유소는 알뜰주유소는 아니지만 사은품 미지급, 세차 서비스 미제공, 카드 포인트 미지급 등으로 일반 주유소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기름을 제공했다.
 
그러다 지난해 1분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3달러까지 치솟으면서 더 이상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이 주유소는 무리하게 기름값을 내리기 위해 지난 3월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됐다. 현재는 6개월의 영업정지가 풀렸지만 여전이 영업은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Nc-OIL 주유소 인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사장은 "Nc-OIL 주유소에서 주유를 한 고객들의 시동이 수시로 꺼진다는 제보다 다수 접수돼 적발됐다"며 "여기도 갈수록 주유소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어 우리도 주유소를 접고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주유소업계 "폐업도 돈 없으면 못한다"
 
경영 사정이 나쁘다고 해서 폐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주유소 폐업비용은 주유소 규모에 따라 1억4000만~2억20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주유소 건물 철거비용이 7000만~8000만원, 매립된 주유탱크를 없애고 토양을 정리하는 데에만 7000만~1억4000만원이 들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악화돼 문을 닫는 주유소들은 이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최근에는 폐업 대신 무작정 방치를 하는 '휴업' 주유소가 늘어나는 추세다.
 
주유소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휴업 주유소는 415곳으로 전체 주유소(1만2833여곳)의 3%나 됐다.
 
휴업 주유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외관상 문제가 아닌 매립된 유류탱크로 인한 토양오염까지 연결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어 심각성을 더 한다.
 
주유소협회는 늘어나고 있는 휴·폐업 주유소를 지원하기 위해 '주유소공제조합'을 설립해 지원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폐업한 주유소 업주를 대상으로 초기 사회 정착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재원은 회원사로 가입한 주유소들이 매월 내는 3만원 상당의 회비로 조달할 예정이다.
 
주유소협회의 폐업 주유소 지원과 더불어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2월28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주유소에 폐업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안은 지식경제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며,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지식경제부는 앞으로 5년간 주유소 등 석유판매업자가 경영악화로 폐업신고를 할 경우 ▲폐업 지원자금의 융자알선 ▲신용보증지원 ▲대체사업 주선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경기불황과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주유소 사정이 급속도록 나빠지고 있어 휴·폐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근본원인은 주유소간 극심한 가격 경쟁"이라며 "정부가 유류세 인하나 정유사들의 공급가 인하 없이 알뜰주유소 도입 등으로 주유소간 가격 경쟁만 커져 정유사와 정부만 배부르고 힘없는 일반 주유소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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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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