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배우들 "서로 전류 느끼는 사이 됐다"

재일교포 정의신 신작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 기자간담회

입력 : 2013-01-30 오후 2:00:32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재일교포 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차기작인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 동경과 오사카를 거쳐 30일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정의신은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를 장기로 삼고 있는 연출가다. 2008년 <야끼니꾸 드래곤>이라는 작품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한일 연극계의 주목을 받은 이후 양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번 신작은 특히 초호화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배우 차승원이 출연해 처음으로 연극무대를 밟은 데다 일본 아이돌그룹 'SMAP' 출신이자 '초난강'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쿠사나기 츠요시, 일본의 연기파 배우 카가와 테루유키, 청순미의 대명사 히로스에 료코 등 일본의 유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나에게 불의 전차를>의 배경은 일제 말기의 한국이다. 어려운 시기에 꽃 핀 양국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이 작품은 일본 공연을 이미 성공적으로 마쳤다. 기획과 제작은 우메다 예술극장과 하쿠호도 DY미디어파트너가 맡았으며 국내 공연의 경우 1월 30일부터 2월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진다,
 
국내 첫 공연을 앞둔 30일 주요배우들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층 로비에 나와 작품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차승원의 경우, 연극은 처음이다. 연극 중에서도 정의신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차승원)작품이 하나 끝날 때마다 늘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트레이닝을 조금씩 받았다. 배우로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여러가지 신체 트레이닝이었다. 그리고 전작이 끝났을 때 너무 소진된 느낌이었다. 광고도 너무 많이 찍었다. 조금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시작하고 싶던 찰나에 정의신 작가와 이 연극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정의신 작가의 전작인 <야끼니꾸 드래곤>을 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깊은 울림을 주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일단 연습기간이 있으니 부딪혀 보자' 하는 생각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연습했다.
 
때로는 불면증도 있었다. 연극 용어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낯선 환경, 낯선 연극문화에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도 받았다. 하지만 여기 계신 한국과 일본 배우분들이 힘이 됐다. 어쩌면,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이렇게 끈끈하고 돈독하게 배우와 인간으로서 섞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일본에서 40회 공연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고 '내가 이걸 왜 했지' 하는 생각이 중간중간 들었지만 오사카 공연이 끝나고서는 큰 산을 넘은 느낌을 받았다.
 
-일본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왔다. 소감은? 
 
▲(카가와 테루유키) 연극의 신이 있다면 신께 감사하고 싶다. 차승원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조금은 감상적인 것이다. 연극을 시작하게 되면 배우들끼리 팀워크를 다져가게 되는데 마치 전선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는 듯한 그런 느낌이 있다. 그 이후 서로 전류가 흐르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사실 차승원이랑은 같은 장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떻게 말하면 다른 방에 각각 있는 전선, 플러그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아침에 차승원의 방에 몰래 들어가 가장 큰 메인 플러그에 전원을 켜며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제 방에 들어가보면 차승원도 나타나서 플러그를 꽂아가는 걸 알 수 있다.
 
이 공연에서 차승원이라는 존재는 메인 플러그, 메인 전원이다.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함께 하는 모습 그 자체이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가 서로 전선을 꽂을 수 있는 사이가 됐다는 것은 앞으로 여러분들께 계속 보여드릴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일간 관계가 좋지 않은데?
 
▲(차승원)이 연극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더 안 좋은 상황이었다. 1920년대에는 훨씬 더 안 좋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 한국의 문화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본인들과 그 당시 민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남사당패 꼭두쇠 조선인과의 우정이 이 연극에 담겨 있다. 현재 시점에선 사실 어렵고, 앞으로도 더욱 어려운 시기가 온다 하더라도 이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절망보다는 희망적인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갇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해주는 것은 역시나 옆에 있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국경마저도 뛰어 넘어 옆에서 서로 간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모습이 연극에 나타난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지만 한일 양국의 모든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해주면서 앞으로는 좀 더 밝고 희망찬 앞날을 꿈꿨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쿠사나기 츠요시)차승원과 같은 마음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텐데 특히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에 서로 믿음을 쌓아 나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가 좋은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품의 배경이 거의 100년 전 한국인데 일본 배우들의 경우 캐릭터를 구성하기 어렵지 않았나?
 
▲(히로스에 료코)시대적 배경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대본 자체에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언어 장벽을 뛰어넘은 우정,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굉장히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 연극에서는 남자들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남자배역이 전체의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남성 캐스트의 비중이 높다.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 그것도 한국에 사는 일본 여성으로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일본 기모노를 입었을 때 나오는 행동들에 대해 특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당시에는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라는 전통의상에서 서양식으로 옮겨가던 시기였는데 나는 이 연극에서 일부러 더 기모노를 입어서 일본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인내심, 행동들을 더 강조해봤다. 그 시대 여성들의 글이나 책, 옷 등의 자료를 굉장히 많이 받아 공부했다. 이런 것들은 캐릭터를 살리는 데 해야 할 최소한의 것이라 생각한다. 이 밖의 것들은 무대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재현하게 됐다.
 
▲(쿠사나기 츠요시)아무리 생각해도 100년 전 일은 알 수 없다.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많이 연습했다. 정의신 연출가도 많은 지도해줬다. 같은 장면, 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끊임없이 연습했다. 내 배역의 인물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 시대를 살아갔을까 생각하면서 무조건 연습을 했다.
 
▲(카가와 테루유키)내가 맡은 역할은 오오무라 키요히코라는 인물이다. 직감적으로 이 인물은 정의신 감독의 분신이 아닌가 생각했다. 또 직감적으로 어떤 시대에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아갔는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아니라 이 당시에 오오무라 키요히코라는 인간이 느낀 고통의 크기가 얼마만큼이었을까 생각하면서 또한 나의 고통의 크기와 그것을 같이 상상하고 수치화하면서 역할을 만들어갔다.
 
오오무라라는 인물은 연인이 살해당했고 본인은 다리를 절고, 현재 부인과는 관계가 원만하지 않는 등 정말 힘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제 인생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런 힘든 감정들을 생각하며 배역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싱크로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배우들의 열정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하던데?
 
▲(카가와 테루유키)일본인의 특징은 육체와 육체 사이의 거리가 멀다. 실제로 얘기할 때도 한 발 떨어져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서로 가깝다. 이웃나라지만 뜨거운 정열, 에너지를 보면서 배우로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두 가지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다.
 
처음 연습할 때 차승원이 쿠사나기의 멱살 잡는 장면이 있었는데 힘껏 멱살을 잡다가 단추가 첫줄부터 끝까지 다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내가 쿠사나기가 되고 싶다. 나의 단추를 다 떼어가다오'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극중 인물인 춘학(이현응 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차승원과는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장면이 거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뜨거운 배우라는 걸 느꼈다.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공연 전반부에는 내가 어떤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아주 거친 상황이 벌어진다. 너무 힘을 쏟다보니 한번은 갈비뼈가 부러졌던 일이 있었다. 병원에 가 봤더니 전치 한 달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때문에 연출 내용도 조금 수정됐다. 그러다 회복이 되어가던 어느 날 덕주라는 배우가 내가 갈비뼈가 부러진 걸 잊어버리고 힘껏 껴 안는 바람에 갈비뼈가 다시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덕주 배우를 정말 사랑한다. 그 상황을 통해 한국 배우의 열정과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추억이 되기도 했다. 허나 그 때 이후로 두 달이 지났는데도 가슴께가 아프다(웃음). 
  
-차승원은 줄타기를 직접 했다. 어렵지 않았나?
 
▲(차승원)연습 초반 때는 줄타기가 계속 꿈에 나왔다. 태어나서 손에 꼽힐 정도의 공포스런 경험이었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 3회째에는 줄에서 떨어져 큰 사고가 나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서 6회 공연을 앞두고 있다. 한 회에 두 번씩 총 12번의 줄타기를 더 해야 한다. 예전보단 나아지겠지만, 어떻게 될 지 나도 잘 모르겠다. 줄타기 때문인지 이 연극은 나한테 신기하게 느껴진다. 쌓이는 게 아니라 다시 원점, 다시 원점으로 간다.
 
그러나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고 한국 배우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주는 배우 분들과 같이 한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기억이자 추억으로 남는 작품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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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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