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영기자] “지난해 설보다 매출이 20%나 줄었어요. 경기가 참 안 좋네요.” 현대시장에서 5년째 ‘동화 떡 방앗간’을 운영하는 전모씨의 말이다.
전씨는 “지난해 설 이 시간대에는 시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며 “이번 설에는 시장을 찾은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덧붙였다. 전씨와 같이 일하는 두 젊은이는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곤 했다.
설 전날인 9일 오후 3시30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현대시장 중앙거리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예년에 볼 수 없던 풍경이다.
현대시장에서 ‘현대 식품 생선’을 운영하는 윤희일씨는 “지난 설 전날에는 오후 4시면 생선을 다 팔았다”며 “지금은 4시30분인데도 이렇게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설 전날 매출액은 400만원 이었는데 오늘은 200만원 밖에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윤씨 가게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북어와 조기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설 전날(9일) 오후 4시30분에도 팔리지 않고 남아 있는 생선들 (성남시 현대시장 ‘현대 식품 생선’)
설 대목을 기대하는 경기도 성남 지역 상인들의 매출이 줄은 것은 경기불황과 물가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줄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5% 올랐지만 농축수산물 등 설 식탁 물가는 2.1% 올랐다.
현대시장에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온 김모(성남시 태평동)씨는 “물가가 오르고 경기도 안 좋아 올해는 지난 설 음식의 40% 수준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현대시장에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사러 온 이모(성남시 태평동)씨는 “작년 설에는 45만원 정도의 음식을 준비했는데 올해는 35만원 정도로 줄였다”며 “경기가 안 좋아 남편이 가져다 준 돈이 줄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지난 설 음식과 비슷한 규모로 준비했지만 물가가 올라 비용이 더 든 경우도 있었다. 현대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김모(성남시 수진동)씨는 “작년 설 음식과 비슷하게 샀지만 물가가 올라 5만원이 더 들었네요”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17일 전국의 주부 350명을 대상으로 한 '설 소비계획 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가정주부 10명 중 4명은 올해 설 소비를 지난해보다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설 소비를 줄이겠다는 주부들은 그 이유로 ‘물가 상승’(41.9%)과 ‘실질 소득 감소’(21.9%)를 가장 많이 꼽았다.
조사에서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일 항목은 ‘선물·용돈’(60.6%)과 ‘차례상 비용’(22.6%)이었다. 설 선물계획이 있는 주부들은 ‘3~5만원 미만’(34.8%)과 ‘3만원 미만(‘31.6%)의 저가용 선물을 선호했다.
실제로 마트를 찾은 소비자들은 저가용 선물세트를 많이 찾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저가용 선물세트 판매 비중이 늘고 고가용 선물세트 비중은 줄었다”며 “마트측에서도 저가용 상품을 많이 준비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분당 이마트를 찾은 이모씨는 “경기가 안 좋아 설 선물은 비싸지 않은 것으로 준비했다”며 “5만원대 과일 세트를 샀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설 소비 위축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모란시장에서 20년째 과일가게 ‘영진네’를 운영하는 전영진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지난 설보다 매출액이 40% 떨어졌다”며 “지난 설 전날 저녁 6시쯤에는 과일이 이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녁 6시 영진네에는 차례상에 오르는 사과와 귤, 배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저녁 7시면 손님들이 오지 않아 가게를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6시부터 영진네를 떠난 6시20분까지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저녁 6시에도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과일들 (성남 모란시장 부근 ‘영진네’)
영진네 옆에 위치한 ‘모란생고기 직판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모란생고기 직판장 관계자는 “매출이 지난 설의 60% 수준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서 10년째 ‘낙원 떡 방앗간’을 운영하는 신모씨도 “이번 설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 매출의 60~70% 수준이다”며 “전기료와 설탕 값은 오르는데 걱정이다”고 말했다.
낙원 떡 방앗간 100M 옆의 ‘궁중 떡 방앗간’ 관계자는 “햅쌀과 전기료가 올라 떡 값이 올랐다”고 말했다. 지난해 설에는 1kg에 5000원이었던 떡국용 떡이 올해는 900g에 5500원으로 올랐다. 그는 “매출액은 지난 설과 비슷하나 동네에 이사온 인구가 많아진 것에 비하면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여기는 분당과 가까워 1년 사이에 빌라와 주택 수가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식품매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저녁 7시30분 경기도 성남시의 한 대형마트 분당점을 찾은 사람들은 평상시 토요일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축산코너도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가했다. 축산코너 직원은 손님이 없어 가만히 서 있었다. 축산부문 담당자는 “지난 설 전날에는 3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오늘은 2800만원 수준이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점도 지난해 설 전날에는 1억4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오늘은 1억2000만원으로 줄었다”고 덧붙였다.
분당에 위치한 이마트의 축산점 ‘횡성축협한우’도 상황은 비슷했다. 진열대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들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축산점에 들리는 손님은 드문드문 나타났다. 횡성축협한우 관계자는 “올해 설 매출은 지난해 설 매출보다 7~8% 떨어졌다”며 “정육 부분 매출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