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당선자의 태도는 야당을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이다." "자기 당과도 같이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혼자 하겠다는 당선자의 오만한 모습이 드러났다."
민주당의 당선자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당선자는 박근혜 당선자가가 아닌 이명박 당시 당선자이고,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이 아닌 5년전 통합민주당이다. 이말은 2008년 2월 당시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최근 민주통합당에서 쏟아내고 있는 발언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대응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는 "새정부 출범을 못하게 하는 것은 당선인에 대한 탄핵과 다름없다"거나 "정치적 지렛대로 당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조직개편안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라고 말했다.
최근 이한구 원내대표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민주당의 반대는)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입지강화를 위한 당내 선명성 경쟁 탓"이라는 식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이명박 당선자도 지금의 박 당선자처럼 정부 출범을 1주일 앞둔 2월18일 국무위원 내정자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 이 여파로 조직개편 협상은 결렬되고 민주당은 "이명박 당선자의 리더십은 불도저 리더십"이라며 일방주의적 행보를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당선자의 기습 발표는 박근혜 당선자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당시 여야의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와중이었지만 이 당선자는 당시의 현행법에 따라 인선을 발표했다. 정부조직법 통과 이전의 부처에 맞게 국무위원을 지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이 결렬돼 부득이하게 기존 법에 따라 각료를 발표하게 됐다"며 "국회의 결정을 존중해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해 국회 존중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 당선자는 자신의 구상안대로 현행 정부조직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임명했다.
이 같은 행위는 '정부조직 개편안은 원안대로 갈테니 그리 알라'는 당선자의 압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야당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박 당선자는 지금 야당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라는 얘기는 커녕 '불통' '밀실' 등의 오명을 얻고 있는 처지다.
여야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이던 지난 13일에는 "야당 정부조직 개편안을 납득할 수 없다"며 "인수위 조직개편안이 당당하고 설득력 있다"며 원안고수 입장을 밝혀 협상이 결렬에 이르렀다.
또 지난 15일에는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조직개편안 통과를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이는 오히려 개편안을 손댈 생각이 없다는 또하나의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야당과의 직접 대면 소통은 지난 7일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당선자와 여야 대표가 만났던 3자 회담이 아직까진 유일하다. 하지만 박 당선자는 여기서 "(나를 선택하지 않은 48% 국민들까지) 다 품고 가겠다"고 말한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 당선자는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됐지만 동시에 역대 가장 많은 반대표를 안고 당선됐다. 또한 반대표는 결집력이 매우 강해 박 당선자가 소통에 적극 나서야하는 이유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인수위원회 구성 초기부터 "(박 당선자를 찍지 않은) 48%는 반 대한민국 세력"이라고 주장했던 윤창중씨를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해 야당의 비판에 직면했다.
또 18일 지명한 청와대 비서실장에는 민주당을 "빨갱이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던 허태열 전 의원을 임명했다. 보수성을 넘어 극우인사들을 중용하며 '국민대통합'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통과 언행불일치 탓에 박 당선자의 지지율은 갤럽 조사에서 2월 들어 하루를 제외하고 40%대에 머물고 있다.
박 당선자의 불통 행보에 대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박근혜 당선자의 불통행보는 고유 스타일로 보인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 시위를 거치며 본격적인 불통행보를 보인 데 비해 박 당선자는 초반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박 당선자 측은 이러한 불통논란에 동의할 수 없는 듯하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내정자는 18일 인선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 당선자가 불통이라는 건 인정하기 어렵다"며 "신뢰·원칙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말해 세간의 불통 비판에 반박하며 소통방식에 변화를 줄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