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이명박 정부 임기 5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총자산 증가율 격차가 무려 3배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20대 그룹 자산이 78% 불어나는 동안 중소기업 자산 증가율은 26% 수준에 그친 것.
<뉴스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4일까지 중소기업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기업집단 정보공개시스템(OPNI)이 제공하는 '중소기업(제조업 기준) 실태조사'와 '기업집단별 경영성과정보'를 비교 분석한 결과, 지난 2008년부터 2012년 4월까지 20대 그룹의 총자산 증가율은 77.6%,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26.3%를 기록했다.
재계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등 대표적 재벌기업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 총자산이 667조1610억원이었다. 이어 임기말인 지난 2012년 4월에는 총자산 규모가 1202조8330억원으로 두배가량 늘었다.
반면 중기청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5인 이상 중소기업 11만2000개 업체 중 80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들의 총자산은 2008년 391조4024억원에서 2012년 494조1943억원으로 26.3%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인위적 고환율정책' 등 MB정부 친재벌 정책 양극화 원인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달 20일 '이명박 정부 5년 평가와 박근혜 정부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위적 고환율정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낳는 주요 원인이 됐다"며 "고환율정책은 수출기업(주로 재벌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고환율정책은 또 소비자물가 상승을 야기했고, 이로 인해 중산층과 서민들의 부담이 증가했다"며 "747 정책목표에 얽매인 나머지 외환보유액만 소진했다는 비판이 야당은 물론 여권, 시민사회 등에 확산됐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또 지난 2008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원화강세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폭 감소를 피하기 위해 서민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감수하면서까지 적정한 환율 상승을 유지한 것으로 진단했다.
실제로 정권 초기 환율 수준을 살펴보면 2008년 1월 936원 수준을 기록했던 달러당 원화 환율이 3월말에는 990원, 6월말에는 1046원으로 급등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며 10월말엔 1291.4원, 이듬해 3월에는 1573.6원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환율상승과 이에 따른 물가상승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며 "또 수출중심의 재벌 대기업들에게는 이득을 안겨준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우리는 지금 일본의 엔저정책이 세계경제를 혼란시킨다고 비판하지만 불과 우리나라도 몇 해 전 실시했던 정책이었다"며 "우리나라 역시 고환율정책을 통해 특히 현대자동차와 같은 수출 위주의 대기업에 특혜를 가져다 줬다"고 비판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1월27일 파이낸셜타임즈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한국은 실질 실효 환율로 따지면 원화가치가 2007년 8월 이후 19% 떨어졌다"며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환율전쟁의 '전사'였으며 이런 한국이 일본의 엔저를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MB정부 내내 끊임없이 회자됐던 '부자감세'와 '출자총액제한제도 완전폐지' 또한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집권 초기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하면서 재벌 대기업들의 규제 완화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누적적으로 진행된 부자감세와 지난 2009년 이뤄진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전폐지 등이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심화를 가져왔다"며 "MB정부의 이러한 정책들로 재벌들은 계열사를 늘리고 자산을 증식했으며, 내부거래를 급증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위 연구위원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국민들 반감을 사자 MB정부가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하고 손해배상제도 등을 도입했다"며 "하지만 손해배상제도는 하도급거래상 기술탈취에 한정된 제도였고, 정책효과 역시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평가 절하했다.
◇참여정부, 中企 총자산증가율 오히려 20대 재벌보다 높아
반면 참여정부 기간(2003~2007년)에는 중소기업의 총자산 증가율이 45.8%를 기록, 오히려 20대 그룹의 자산증가율 39.6%보다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참여정부 출범 첫 해인 2003년 20대 그룹은 396조2870억원, 중소기업은 225조1774억원의 총자산을 기록했다. 이어 임기말 2007년 20대그룹은 553조1710억원으로 총자산이 39.6% 늘은 반면 중소기업은 45.8% 증가한 328조3634억원을 기록했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중소기업 발전을 위해 클러스터 육성산업 등 중소기업 강화 정책에 방점을 뒀다"며 "다만 1997년 외환위기에서 점차 회복하던 시기라 대기업들이 투자를 조심스러워한 측면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시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심화 정도가 낮았던 요인이 반드시 정부의 정책적 요인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턴어라운드'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자산규모의 팽창을 가져오는 M&A나 설비투자 등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어 "MB정부와 참여정부의 경제적 성과를 비교할 때 단순히 정책효과만을 고려해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당시의 세계시장 상황과 환경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환경 변수를 눈여겨 봤다.
그는 "MB정부의 경제정책 효과를 따질 때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배제할 수 없다"며 "물론 이명박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펴면서 대기업의 자산 증가율이 중소기업보다 더 높게 나타난 것도 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에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MB정부 임기 5년은 중소기업에만 시련의 시절이 아니었다. 중산층 역시 몰락한 것. 4일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2년 4분기 중산층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중산층의 소득 비중이 하락한 것은 세계경제 위기로 소득이 줄고 부채는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결국 경제민주화가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관통하며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데는 이명박 정부의 편향된 경제정책이 일조했다는 평가다. 경제민주화 근간에는 'MB시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