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지 15일로 꼬박 1년이 된다.
한미FTA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통상문턱을 낮춰 국가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분으로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6월 협상에 돌입했다.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수출과 투자가 확대되고,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이 늘어 일자리 10만개가 창출될 것이라는 경제효과를 역설했다.
농축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등의 각종 우려와 반대속에서도 한미FTA는 참여정부에서 타결됐고, 이명박 정부에서 발효됐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론분열까지 일으키며 2개 정권, 7년여 세월 동안 떠들썩 했던 논쟁의 결과물을 찾기에는 지난 1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게 많고, 해결한 것보다는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더 많은 현재다.
◇ 편향된 수출 효과..그마저 줄어들 수 있다
한미FTA로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수출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미FTA가 발효된 후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미 수출액은
478억5000만달러로 2011년 4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실적인 477억3000만달러보다 1억2000만달러 증가했다.
그러나 그 폭은 그토록 FTA를 갈망했던 측면에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수출이 증가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국책연구기관들은 한미FTA 이후 매년 12억9000만달러의 수출증가를 기대했었다. 실적과 기대의 차이가 너무 크다.
수출이 미국에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특정 업종에 치우쳤다는 점도 우려대상이다.
지난 1년간 대미수출을 주도한 것은 자동차 부품과 석유제품이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현지생산이 증가하면서 자동차 부품은 10.9% 수출이 증가했고, 관세인하 효과를 등에 업은 석유제품은 수출이 29.3%나 급증했다.
반면 FTA관세혜택을 보지 못하는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35.2% 감소했고, 반도체도 7.7% 위축됐다. 미국 내 국산 스마트폰 점유율이 10%포인트 가까이 증대됐지만, 주로 해외생산에 의존하면서 수출은 35%가 줄었다.
대미 무역수지는 172억달러 흑자로 흑자폭이 39.1%나 증가했지만 이는 수출증가 요인보다는 국내 경기 위축에 따른 수입감소의 영향이 더 컸다. 미국산제품의 수입은 전년대비 9.1%가 줄었다.
그나마 수출효과도 장기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
미국이 최근 일본이 포함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미-EU FT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일본도 EU와 FTA를 추진하면서 세계 최대시장과의 FTA선점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희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EU FTA나 일본의 TPP협상이 이뤄지면 현재 우리나라가 얻고 있는 FTA효과는 정체될 것"이라며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등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산 오렌지값 싸진만큼 제주산 귤 외면받아
FTA를 체결하는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소비자후생 증진이다. 정부도 한미FTA 발효를 앞두고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FTA의 소비자후생 효과는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 상황이다.
관세인하 효과가 유통과정에서 대부분 흡수되면서 물가인하효과는 기대 이하인 반면, 그나마 싼 것을 찾는 소비자들의 식탁은 미국산 농축산물로 채워지고 있다.
역으로 미국 수출길을 찾은 농업인들도 적지 않지만 대다수 국내 농축산업은 위축되는 실정이다.
오렌지와 체리, 자몽 등 일부 과일의 경우 FTA 이전보다 싼 가격에 수입되면서 평균 20%씩 가격 인하효과가 발생했다. 그러나, 아몬드나 쇠고기 등은 오히려 FTA이전보다 가격이 올랐다. 관세가 즉시 철폐된 의류나 화장품 등 공산품의 경우 관세인하 효과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유통과정에서 관세인하효과가 다 흡수되기도 했지만 농축산물의 경우 기후변화나 자연재해가 더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아몬드나 호두의 가격인상은 주산지인 캘리포니아의 폭염이 가격상승의 원인이었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점유율이 줄어들기도 했다.
오렌지와 체리 등이 싸게 수입되면서 국내 제철과일들이 외면받는 사례도 발생했다. 소비자들은 겨울철에 딸기와 감귤보다는 값이 싼 오렌지를 더 선택하게 됐고, 여름에는 자두와 포도, 참외보다는 체리를 선호했다.
올해부터는 오렌지의 계절관세가 30%에서 25%로 추가로 더 인하되기 때문에 국내 농가의 타격은 더 커질 수 있다.
권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FTA는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효과 증대가 목적이기 때문에 향후 풀어야 할 과제도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추후 한중FTA 협상때에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투자고객 늘어났지만 소송부담도 커져
한미FTA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협상이라는 점도 과제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다시 논의해야 하고,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문제도 결론을 짓지 못한 상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11월 한미FTA 국회 비준이 난항에 부딪히자 ISD 재협상이라는 타협안을 내 놨다.
한미FTA발효 이후 외국인직접투자는 전년동기대비 113.6%나 증가한 45억2900만달러를 기록했다. 투자고객이 늘어날수록 소송부담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제2, 제3의 론스타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지 모른다.
문제는 우리측에서 ISD 재논의 카드를 꺼내들면서 미국이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다른 안을 들고 나올 수 있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다. 미국은 현재 수입되지 않고 있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에 대해서도 수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재논의 대상이다. 한미FTA 협정은 발효 후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열어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문제를 재논의할수 있도록 돼 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세관에서 원산지를 증명받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서류제출이 미비하면 특혜관세혜택이 사라질뿐만 아니라 거액의 벌금도 물 수 있는 상황이다.
복잡한 원산지증명과정 때문에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의 FTA활용률은 지난 2월기준 69.6%로 나머지 30%의 기업들은 제도적으로 관세가 사라졌음에도 혜택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대항상공회의소가 350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0%에 가까운 38.8%의 기업들이 한미FTA가 수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