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방송사들의 간접광고(PPL)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PPL은 지난 2010년 허용된 이후 각종 방송프로그램을 점령했다. 이제는 단순히 노출되는 수준이 아니라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극 전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지니게 됐다.
노골적인 PPL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규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비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들은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PPL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1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협찬·간접광고 제품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상파 TV 3개 드라마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
MBC 드라마 <보고 싶다>는 등장인물이 홍삼액을 꺼내 마시는 장면이 2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노출해 해당 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를 받았다. 특히 이들 장면에서는 “자기야, ○○ 홍삼 먹어”라는 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협찬사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SBS의 <청담동 앨리스>는 여자 주인공이 PPL 제품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장면과 그의 동생이 안경 판매점에서 “가격도 싸요. 다 만원대. 괜찮죠?”라며 안경을 판매하는 장면이 지적됐다. 해당 안경 판매점이 광고주였음은 물론이다.
SBS의 다른 드라마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는 등장 인물들이 인터넷 기반 집전화 서비스의 특정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노출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품의 전면을 약 2초간 내보내기까지 했다.
출처: SBS
이 외에도 눈살을 찌푸리게하는 PPL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드라마의 모든 인물들이 모두 같은 회사의 자동차를 타거나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동일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경우는 더 이상 이야기 거리도 못된다.
방송사들이 많은 비판과 징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PPL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방송사와 광고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광고주들로부터 제작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고 광고주나 협찬사들은 자사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면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명확한 규제 기준이 없어 ‘과도한 노출’ 등 모호한 잣대로 심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현재 방송법 시행령에 규정된 방송광고 관련 위반 조사는 중앙전파관리소가 담당하고, 간접광고에 대한 심의는 방통심의위에서 맡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59조의3은 간접광고의 허용범위와 시간, 횟수, 방법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간접광고로 노출되는 상표, 로고 등 상품을 알 수 있는 표시의 노출시간은 해당 방송프로그램시간의 100분의 5를 초과할 수 없다. 다만 제작상 불가피한 자연스러운 노출의 경우는 허용한다’나 ‘간접광고로 노출되는 상표, 로고 등 상품을 알 수 있는 표시의 크기는 화면의 4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 등 애매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시민단체들은 시청자가 곧 소비자로 치환되는 풍토를 우려하며 방송법을 개정해 PPL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도한 PPL이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광고 시청을 강요하는 등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현재 노출의 허용범위 등에 대한 명문화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방송사측에서 자의적으로 PPL을 남용하는 것을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더욱 엄격하고 상세한 규정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도 “PPL 경쟁이 과열되면서 방송이 과소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PPL 규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26일 노골적인 PPL 상품의 홍보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된 개정안을 보면 PPL 상품의 효능과 기능, 장점을 소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방송사에는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방송 프로그램에 가상광고나 간접광고가 포함되는 경우 자막으로 광고정보를 미리 고지하도록 하고 방송광고 규제 체계를 방통심의위로 일원화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최 의원은 “과도한 PPL로 인해 시청권 침해와 방송의 상업화, 프로그램 질 저하 등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규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PPL 규제를 강화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