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환골탈태할까)①"'자기사람 심기' 인사관행부터 깨라"

'검란(檢亂)', MB정부의 '충성할 사람 심기'에서 촉발
한상대 전 총장, 요직에 '고대·공안' 중용이 사태 악화

입력 : 2013-04-04 오후 2:46:55
'박근혜 정부' 초대 검찰 수장으로 채동욱 검찰총장이 오늘 취임한다. 검란(檢亂) 이후 만신창이가 된 검찰이 수장을 잃은지 120여일만이다. 이 기간 동안 대선이 있었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박 대통령은 물론, 국회와 정부, 국민여론이 검찰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시행과제로 떠오른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제 시행'만으로 검찰개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그 저변에 전통과 문화로 포장된 구태의 관습 위에 서 있는 게 사실이다. 뉴스토마토는 총 3편으로 나눠 전·현직 검찰과 법조계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검찰의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지난해 11월 28일 늦은 오후. 
 
검찰 고위간부를 지낸 한 변호사가 최재경 당시 중앙수사부장(현 전주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재경이냐. 너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마라." 
 
최 부장은 "알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 몇 시간 뒤, 대검찰청 감찰본부에서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실시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광준 부장검사에게 최 부장이 부적절한 조언을 해줬다는 것이었다.
 
최 부장은 곧바로 대검 기자실로 내려와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상대 검찰총장과의 의견 대립이 감찰로 이어졌다"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대검 감찰본부는 최 중수부장과 김 부장간 오간 문자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같은 날 대검 간부들은 중수부장 감찰에 반대하며 한 전 총장의 퇴진을 공식 요구했다.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은 이렇게 촉발됐다. 
 
이후 한 전 총장은 "대통령에게 신임을 묻겠다"며 버티다가 같은 달 30일 사퇴했다. 같은 날 최 중수부장도 사표를 냈지만 반려돼 전주지검장으로 전보되면서 '검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그 여진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왼쪽)과 최재경 전 중수부장
 
◇'검란'의 근원지는 이명박정부의 인사권 사적 남용
 
검찰에게 깊은 내상을 입힌 '검란'의 근본 원인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MB정부의 검찰 인사권 사적 남용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MB 정부가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을 임명할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당시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의 전망은 한 전 총장과 총장자리를 두고 맞붙은 차동민 전 서울고검장에게 무게가 실렸다. 큰 대과가 없는 한 차 전 고검장이 될 거란 말도 나왔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나중에 청와대가 한 전 총장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는 얘기가 법무부와 검찰에서 돌았다.
 
MB 정부는 앞서 서울고검장이었던 한 전 총장에게 검찰총장을 맡기기 위해 6개월짜리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역진'시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장을 지휘하는 서울고검장이었다가 다시 지휘를 받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검찰의 비극이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한상대 전 검찰총장
 
◇한상대 前총장, '고대'·'공안' 출신으로 요직 채워
 
'MB 검찰'인 한 전 총장은 취임과 함께 검찰 내부를 자기 사람으로 채워나갔다. 그 라인의 핵심은 '고려대'와 '공안'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는 한 전 총장의 고대 법대 후배인 최교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임명됐다.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임명된 이금로 전 국회법사위 전문위원, 공안기획관으로 보임된 이진한 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검사도 모두 고대 법대 후배다.
 
전국 최대 수사기관의 수장으로 '小총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의 핵심 축인 중수부와 공안부 중추에 고대 법대 출신들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에 공안 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이 기획관이 영전해 맡게 됐고, 특수 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은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해 논란을 빚은 전현준 차장이 맡았다.
 
◇'자기사람' 인사로 검찰 내부 균열
 
검찰 내부에서는 고대 출신 검사들의 잇따른 승승장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출신을 따지는 내부 균열이 생긴 것이다. 특히 대검 공보라인 등 한 총장의 측근을 차지한 고대 출신 검사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 총장은 취임 때부터 '공안'을 강조하면서 공안 검사들에 대한 편애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간부는 "서울중앙지검 내부에 대해 한 총장은 형사부를 총괄하는 1차장 산하는 동물원, 2차장 산하는 식물원으로 표현했다"면서 "1차장 산하는 자신들만의 구역안에서 움직이고 공안은 수뇌가 태양이라 검사들이 수뇌들만 바라본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이 간부는 특히 "한 총장은 '3차장 산하는 자기 편 없고 마음대로 물고 뜯고 자기들 혼자 돌아다닌다. 사파리다'라고 했다"면서 "한 총장이 특수부 검사들을 아주 싫어했다"고 덧붙였다. 
 
 
◇한 前총장 "우등공안, 열등특수"
 
한 총장은 때때로 "우등공안, 열등특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공안부는 대선을 앞둔 지난 정권 말 '민주당 돈봉투 사건'과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수사' 등 친정권 적인 수사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돈봉투가 아니라 초대장이었던게 드러나는 등  '헛발질 수사'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반면, SK 최태원 회장 수사와 각종 정권 비리 수사 등에서 한 전 총장과 다른 결론을 내놓았던 특수부는 결국 한 전 총장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고 복수의 검찰관계자들의 귀띔했다. 
 
이렇게 쌓여온 감정이 결국 서울대 출신으로 특수부 검사들의 수장인 최 전 중수부장과의 충돌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모든 문제가 인사에서 시작해서 인사로 끝나게 된 것이다.
  
최근 한 전 총장은 "그때는 내가 뭔가에 씌인 것 같았다"며 총장 재임 당시 자신의 결정들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한 전 총장과 알고 지냈던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한다. MB정권이 세운 한 전 총장은 처음부터 운신의 폭이 적었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충실한 '여당 도우미'로 검찰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과거는 지워질 수 없다는 평가다.
 
◇"새 총장, 한 총장같은 사람만 아니면 돼"
 
새 검찰총장이 내정되기 전 한 검찰 고위간부는 "한상대 같은 사람만 아니면 된다"며 누구나 인정하고 수긍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혹독한 시련을 거친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현 정부에 대해 기대감이 높은 눈치다.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의 공통점은 모두 조직 내 신망이 두터운 인사라는 것이다.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
 
한 검찰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국회의원들의 선거를 도와주기만 했지 도움 받은 일은 별로 없지 않느냐"면서 "자리를 나눠줄 이유가 적으니 다른 부처는 몰라도 검찰 만큼은 인사도 일 잘 하는 사람 위주로 할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검찰은 이르면 오는 8~9일 고검장급과 검사장 승진 등 대규모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있다. 
 
인사 대상자인 한 검찰 간부는 "황 장관, 채 총장 모두 합리적인 사람이다. 어떤 라인이 이번에는 승승장구 하겠다는 얘기들이 쏙 들어갔다. 첫 인사가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도 이런 얘기들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정라인 중용 악순환이 '칼' 되어 돌아와
 
검찰은 이명박 정부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특정 라인이 검찰 수뇌부를 차지하고 이들이 정권에 충성을 다하는 악순환에 의해 스스로 고통을 짊어져 왔다. 이런 역사는 결국 '외부로부터의 검찰개혁'이라는 칼이 되어 검찰의 목전을 겨누게 됐다.
 
온갖 추문과 비리로 국민의 신뢰를 잃을대로 잃었지만, 이것 역시 ‘자기사람 심기’라는 종전의 기형적 검찰인사의 부산물이다. 
 
채 총장은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새 검찰총장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국민이 원하는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결국 채 후보자가 말하는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검찰이란 '자기 사람 심는' 과거 인사관행을 과감히 깨치는 데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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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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