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체홉과 레프 도진, 관객 간의 깊이 있는 대화

러시아의 거장 연출가 레프 도진의 <세 자매>

입력 : 2013-04-13 오후 2:39:08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러시아 연극 연출가 레프 도진의 작품이 상연되는 공연장에 가면 관객석 앞자리에 주로 연극배우들이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배우들이 앞자리를 노리는 이유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를 눈 앞에서 보기 위해서다.
 
레프 도진과 그가 이끄는 말리 극장을 이야기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는데, 바로 러시아 출신의 배우 겸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의 전통이다. 틀에 박힌 연기를 지양하며 진실하게 그 역할로 사는 것을 강조하고 배우 간 앙상블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니슬랍스키적인 DNA. 그 유전자가 레프 도진, 그리고 말리 극장에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러니 연기 욕심 많은 배우들이 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 그 놀라운 비법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배우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체홉과 스타니슬랍스키의 전통을 계승한 도진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1900년대 전후 러시아 연극의 황금기 풍경을 잠시나마 엿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스타니슬랍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레프 도진도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 안톤 체홉의 작품을 선호한다. 올 봄 LG아트센터 무대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세 자매>는 <벚꽃동산>, <플라토노프-제목 없는 희곡>, <갈매기>, <바냐아저씨>에 이은, 레프 도진의 다섯 번째 체홉 작품이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연극은 천천히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거장은 길이가 긴 연극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표면적이고 외적인 형상을 만들어내고 연극을 미끈하게 뽑아내는 것보다는 인물 각각의 내적 형상과 생활을 창조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연극의 길이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도진은 체홉의 희곡 자체를 "굉장히 많은 실들이 엮여 있는 천"에 비유했다. "그 실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체홉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거장의 설명이다. 그 중에서도 <세 자매>를 "굉장히 복잡한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세 자매>에는 1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해 저마다 자기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대화들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도진의 연출작업이 시작된다.
 
인물 간 대화가 어디서 끝나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체홉 희곡을 다루는 데 있어 심도 있는 읽기는 어찌보면 필수다. 각 인물 하나하나가 주인공처럼 다뤄지므로 인물의 여러 가지 운명 중 어떤 것이 중요한 지, 서로의 운명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비극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하나하나 밝히는 게 도진이 말하는 연극의 과정이다. 물론 연극 만들기에 정답은 없다.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연극이다.
 
체홉은 유머 감각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복잡하고 진지한 대화를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체홉이 살아나 레프 도진의 공연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뭘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희곡을 들여다보고 공연을 만들었느냐고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홉이라면 도진의 무대 위 인간, 즉 충족되지 않는 희망과 실패한 계획, 잃어버린 꿈, 불가능한 사랑에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만큼은 '저게 바로 내가 말하려 했던 것'이었다며 가슴 깊이 공감할 것임에 틀림 없다.
 
혹은 체홉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희곡 속에서 온전히 자기 삶을 살고 있던 각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을 수도 있겠다. 흔히 대작가들은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종하는 게 아니라 단지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을 마련해 둘 뿐이라고 말한다. 도진은 단순히 주어진 희곡의 대사를 잘 읽어내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포착해낸다. 그리고 대사를 최소한으로 건드리되 대사 간 사이의 침묵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며 풍성한 의미를 담아낸다(극이 길어지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가령 세 자매 중 첫째인 올가와 둘째 마샤의 남편인 꿀릐긴이 등장하는 3막에서 꿀릐긴이 처형인 올가에게 '마샤가 없었다면 올가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하자 올가가 황당해 하는 대목은 본래 체홉의 희곡에도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도진은 그 말 이후 올가와 꿀릐긴이 키스를 나누게 하는 장면을 연출해 관객의 허를 찌른다. 이런 설정은 올가의 외로움이나 권태와 더불어 관능에 대한 욕구까지 읽어내는 효과를 내는 한편, 이후 마샤에 대한 꿀릐긴의 애정 표현이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미심쩍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레프 도진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그가 스타니슬랍스키 외에 메이어 홀드의 전통도 잇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주의 연기술뿐만 아니라 극장주의 양식도 레프 도진 극의 큰 줄기를 이룬다. 절제되고 단순화된 양식적 무대, 조형적 움직임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실주의 연기에 신선함을 불어 넣는다.
 
 
먼저 양식적 무대의 경우 <바냐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에서 허공 위의 건초더미가 내려 앉는 장면, 또 이번 <세 자매>에서는 공연 진행 중 무대 뒷면에 있던 2층집 프레임이 점차 앞으로 나와 무대와 인물을 차츰 압박하는 장면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겠다.
 
조형적 움직임은 도진의 극 중 주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이번 <세 자매>의 경우, 팽이처럼 빠르게 제자리에서 돌면서 춤 추는 둘째 마샤의 모습이 그랬다. 극 중 막내 일리나가 선물로 받는 팽이를 배우들이 실제로 무대 위에서 돌린 이후, 마샤는 마치 그 팽이를 흉내라도 내는 듯 양식적 춤사위를 선보인다. 불만족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의 내면을 빠른 제자리 돌기 춤으로 순식간에 포착하는 대가의 솜씨는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게 했다.
 
레프 도진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극을 통해 체홉을, 또 관객을 만나기 원한다. "나는 내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도진의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짐작하건대 아마도 도진의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삐 돌아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홀로 자기 내면과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단 하나의 장소가 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 가끔은 '신이 뱉어낸 농담'처럼 느껴지는 인생을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며 마음 속 이상향을 버리지 않고 헤매고 고민하며 사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 덧붙이자면, 긴 시간을 견뎌내며 기꺼이 극을 통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 도진의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짧은 시간으로는 도저히 인생이을 깊이 묵상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없다고, 도진은 자신의 연극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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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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