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단순한 주제의식, 겉도는 놀이판

고선웅의 연극 <리어외전>

입력 : 2012-12-26 오후 6:43:1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은 배은(背恩)을 주제로 삼고 있다. 늙은 왕 리어는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으며 충성도를 시험한다. 사랑을 과장되게 표현한 두 딸은 영토를 물려 받지만 정직한 태도로 덤덤한 효심을 표현한 막내 딸은 추방 당한다.
 
오래된 고전인만큼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내느냐가 연극 <리어왕>을 보는 재미다. 아예 주제를 재해석하거나 패러디를 하는 사례도 많다. 인간의 어리석음, 권력의 무상함 등에 방점을 찍으며 극에 새로운 깊이를 더하는 경우다.
 
달변의 작가이자 톡톡 튀는 연출인 고선웅이 <칼로막베스>에 이어 다시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재해석한다고 해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쉬웠다. 군데군데 재치있는 설정과 해석이 눈에 띄었지만 찰나적인 재미가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야기가 보수적이고 단순하게 변형된 탓이다.
 
무대 위에는 또 하나의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연출가의 세태풍자 의도를 시각화해 보여준다. 고선웅 연출은 연극에 <리어외전(外傳)>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낡은 것을 무조건 새 것으로 대체하려는 각박한 현실'을 통속극의 형태로 무대에 풀어낸다. 원작의 인물과 줄거리를 대부분 그대로 차용하고 있지만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코러스를 전지적 시점의 해설자로 적극 활용한 것, 그리고 유기노인수용소인 '치킨하우스'를 설정한 것이다. 조용필의 '허공', 설운도의 '나침반' 등 흘러간 가요도 줄기차게 흘러나온다.
 
코러스와 치킨하우스, 옛 가요 등의 설정을 통해 연출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세대교체를 정면 비판한다. 원작 <리어왕>에서 설파하는 독선적인 권력과 이로 인한 허망함은 <리어외전>으로 넘어오면서 이전 세대에 대한 공경과 도리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리어외전>에는 리어가 두 딸에게 내침을 당하기 전 리어 역시도 과거 자신의 아비를 홀대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째 딸 리건의 야심가득한 남편인 콘월 공작의 경우, '리어카를 끄는 리어왕'으로 대변되는 낡은 역사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겠다고 외치지만 결국 원작보다 강도높은 악행을 일삼는다.
 
그러나 이런 재해석이 다소 어정쩡한 상태에 멈춰있다. 몇몇 장면을 추가한 것만으로 리어왕을 세대갈등의 이야기로 확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리어왕이 '리어카를 끌며 경제성장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사실도 극중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난다.
  
세대간 대립을 다소 편향적인 시각으로 다룬 점도 아쉽다. 극 말미에 리어왕이 첫째 딸, 둘째 딸과 그의 남편 콘월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에게도 총구를 겨누지만 그 직전까지 리어와 달리 젊은 세대는 오로지 자기욕망에만 충실한 전형적인 악인으로 표현된다. 그나마 셋째 딸과 그의 남편 등 일부 살아남은 자가 젊은이로 설정된 것이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유지시켰다. 고전에 대한 재치있는 재해석이 실패하자 무대 위에는 화려한 장치, 복고풍의 트로트 음악 등 오락성 짙은 표현만이 잔상처럼 남는다.
 
제작 LG아트센터, 원작 셰익스피어, 각색.연출 고선웅, 무대미술 여신동, 작곡.음향 김태규, 조명 류백희, 의상 정경희, 소품 김수진, 안무.움직임 김재리, 분장 장경숙, 음향 이범훈, 출연 이승철, 추귀정, 박주연, 이경미, 선종남, 유병훈, 안상완, 호산, 이정훈, 이명행, 조영규, 김명기, 김성현, 견민성, 홍의준, 조한나, 김영노, 강대진, 손고명, 강득종, 육상민 등, 28일까지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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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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