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물동량 감소와 선박 공급 과잉으로 침체된 해운업계가 무한 버티기에 돌입했다. 내년 시황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면서 올해가 생존을 위한 마지막 고비가 됐다. 관건은 버틸 수 있는 재원 마련, 즉 유동성 확보에 있다는 게 업계 고백이다.
국내 빅3 해운업체들의 지난해 실적은 사실상 바닥이었다.
한진해운(117930)은 매출 10조원을 돌파했지만 순손실이 6379억원에 달했다.
현대상선(011200)은 988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전년(5343억원)에 비해 적자 폭이 두 배로 늘었고,
STX팬오션(028670)은 4668억원의 순손실로 전년(219억원)에 비해 적자 폭이 무려 20배 가량 크게 벌어졌다.
◇물동량 감소와 선박 공급 과잉으로 고전하고 있는 해운업계가 선박 매각, 회사채 발행 등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여기에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부담이 더해져 해운업계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들 빅3 업체가 올해 상환해야 하는 금액만 1조가 넘는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이달 27일 1100억원, 내달 24일 2500억원 등 상반기에만 36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내달 14일 2000억원, 10월22일 2800억원 등 총 4800억원을 갚아야 한다.
STX팬오션은 지난달 2000억원을 상환한 데 이어 올 10월 2000억원을 더 갚아야 한다. 특히 팬오션의 재정적 어려움은 STX 그룹 전체를 유동성 위기에 빠트리는 도화선이 됐다. 최근 채권단에 자율협약 체결을 제의하는 등의 수모로 이어진 직접적 원인이었다.
그나마 올 1분기 실적이 개선돼 3개 해운사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적자 폭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에 업계는 기대를 걸고 있다.
이와 함께 올 초 해운 시황이 바닥을 찍고 하반기부터 회복 추세로 전환, 내년에는 업황이 개선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이 이어지면서 해운업계는 '일단 올해만 버텨보자'는 자세로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해운사의 핵심 자산인 선박 매각은 물론 회사채 발행, 운임 인상 등 재무효율을 높이고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한진해운은 지난달 2200만달러에 4000TEU급 파나막스 컨테이너선 1척을 그리스 다이애나시핑에 매각했으며, 현대상선도 올 초 29만9000dwt급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2100만달러에 팔아 200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했다. STX팬오션도 상반기 내 LNG선박을 매각해 1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회사채 발행에도 적극적이다. 한진해운은 이달 초 500억원 규모 회사채와 1억5000만달러(약 1676억2500만원) 규모의 외화표시채권 등 총 2176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22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한도를 2000만주에서 6000만주로 늘리고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항을 개정했다.
STX팬오션도 지난달 26일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6000억원 한도의 제3자 배정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전환사채(CB)의 발행한도를 각각 1조원으로 확대하고, 제3자 배정 목적도 다변화해 자금 조달 통로를 확장했다. 지난해 200억원이었던 이사 보수한도도 100억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운임인상도 잇따르고 있다.
한진해운의 경우 이달 1일을 기점으로 미주 노선 컨테이너 운임을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320달러,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400달러 인상하기로 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올해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으로 판단, '올해만 잘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주요 해운기업의 1분기 예상 실적이 전년보다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기세를 몰아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것이 업계의 목표"라고 전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8년 급격히 늘어난 선박 발주로 대부분 해운기업의 선박금융이 가파르게 증가해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중국 경기 둔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가 국내 해운업계에는 매우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