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KBS교향악단의 정상화 과정에 부쳐

입력 : 2013-04-18 오후 1:18:56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KBS교향악단이 재단법인 분리 이후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다. 경영진은 재정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항공사나 자동차업체 등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교향악단과 협연하는 해외 음악가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은 오케스트라를 만들려는 고민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상임지휘자 선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경영진의 조급증이 염려스럽다. 가시적인 성과를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 KBS교향악단 경영진은 오는 6월 내에 지휘자를 선임하려는 눈치다. 현재 KBS교향악단은 재단 출범 이후 정기연주회나 초청연주회에 다양한 해외 지휘자들을 모셔 연주하며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춰보고 있다. 현재 케이스 바컬스, 알렉산드르 라흐바리, 요엘 레비 중 하나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지휘자들 간에 어떤 공통된 철학이나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아무래도 유명세 위주로만 초청하는 분위기다.
 
지휘자 선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KBS교향악단이 향후 어떤 오케스트라로 발전할 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계약 기간 이후까지 이어질 유산을 오케스트라 내에 남기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문제지만, 세계적인 명장이라는 것이 오케스트라를 잘 꾸려나가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휘자 선임과 관련해 김용배 추계예대 교수는 급하게 서둘러야 될 문제가 전혀 아니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좋은 지휘자들은 이미 타 오케스트라와 2~3년 가량의 계약이 다 돼 있는데 그런 사람 빼고 해야 하니 인재풀이 적은 실정”이라며 “지금 아무 일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지휘자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견임을 전제한 뒤 정말 좋은 지휘자를 선임하려면 1~2년 가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지휘자가 바람직할까? 우선 KBS교향악단의 고질적인 병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난해 함신익 전 지휘자와 단원들간 갈등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KBS교향악단에는 무엇보다도 오케스트라 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한 상황이다.
 
베를린필의 상임지휘자 선정과정이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겠다. 베를린필의 경우 지휘자 후보군으로 열 명을 선정하고 단원들이 하나하나 체크하며 정리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막판에 남은 사람은 다니엘 바렌보임과 사이먼 래틀이었다. 두 지휘자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최고 수준의 명장이지만 베를린필은 최종적으로 사이먼 래틀을 택했다. 바렌보임은 단원이 실수하자 채근한 반면, 래틀은 ‘그것도 좋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더 좋지 않나’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오케스트라와 설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단원들 사이의 화합도 고려해야 한다. 재단법인 분리 과정을 거치면서 KBS교향악단의 단원은 현재 전적 단원과 파견 단원이 3대7의 비율로 구성돼 있다. 재단법인 분리에 모두가 동의하지 않은 채 사실상 임시 봉합된 상태다. 재단 법인 분리 후 KBS교향악단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서로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이 상황을 넉넉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형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다 재단법인 분리 이후에도 경영진과의 마찰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KBS교향악단에서는 단원들에 대해 상시평가를 하되 전체 단원의 10%에 '미흡' 평가를 주고, 2년 동안 '미흡'을 받은 사람 중 3% 에 대해 재오디션을 보고, 재오디션 결과에 따라 해촉할 수 있다는 내용의 규정이 단원과의 상의 없이 이사회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근무여건이 불안한 상황에서 안정된 연주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영진과 단원 사이 불협화음을 제거하고 연주의 질 향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단원 평가 문화를 바로 세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향악단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이디어를 앞세워 관객 앞에서 연주할 곡에 대한 표면적인 연습만 시키는 지휘자가 아닌, 오케스트라의 기본기를 키우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아무리 프로 오케스트라라도 제대로 된 훈련과정을 꾸준히 거치지 않는다면 발전할 리 만무하다. 그 동안 해외의 유명 지휘자들이 상임지휘자를 맡으면서 단기간으로 주목을 끌었을지언정 KBS교향악단 표 음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고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지휘자는 없었다.
 
이와 관련해 문일근 음악비평가는 이런 형태의 오케스트라 운영은 결국 일본 NHK의 뼈 아픈 실책을 반복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비평가는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오케스트라에 현재 음악적 특색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통일하고, 초견력(처음 보는 악보를 바로 연주해내는 능력)을 키우고, 소리 내는 방법을 가르쳐야 고유의 색깔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본 조건부터 다 갖추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지향적인 비전이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음악 흐름을 읽는 안목이 있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구별되는 KBS교향악단만의 개성을 짚어내고, 이 개성을 세계 클래식연주의 새 경향에 얹어 궁극적으로 해외진출까지 모색할 의지가 있는 지휘자가 가장 이상적인 지휘자가 아닐까 싶다. KBS교향악단이 새 비전으로 무장해 과거의 아픔을 훌훌 털고 '영원한 라이벌' 서울시향과 자웅을 겨룰 날을 기대한다. 조급증을 버려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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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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