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휴대폰 생태계를 훼손해선 안된다

입력 : 2013-04-24 오전 10:00:00
휴대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호갱님'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듯 싶다. '고객님'과 '호구'를 결합한 신조어인 '호갱님'은 휴대폰 가격을 곧이곧대로 내고 구입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같은 말이 공공연히 나돌만큼 최근 휴대폰 시장은 혼탁양상에 시달렸다. 이른바 '버스폰'이 등장하는 등 조변석개하는 보조금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차별을 겪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정부는 지난해 말 '영업정지'와 '과징금부과'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고, 그래도 시장이 정화되지 않자 박근혜 정부는 더욱 강력한 조치를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새 정부의 서슬에 겁먹은 탓일까. 통신사들은 보조금 규모를 대폭 줄이고 몸 낮추기에 들어갔다. 기존에 10만원선에서 거래되는 휴대폰 가격이 70만원까지 오르는 등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보조금 빙하기'에 접어들자 일평균 번호이동건수는 1만5천여건에 머물면서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시장 투명화를 이루겠다는 의도를 단기간에 어느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 격이 됐을까.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시장의 흐름마저 바꿔놓았다.
 
보조금 삭감으로 인한 급격한 휴대폰 가격 상승은 수요감소로 이어져 시장 규모를 대폭 축소시켰다.
 
시중 판매점과 대리점들은 휴대폰 판매대수가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문을 닫는 점포가 속출하면서, 일각에서는 연말까지 전체의 절반은 폐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는다.
 
전국적으로 휴대폰 판매점과 대리점의 수는 5만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곳에서 일하는 약 30만명의 국민들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휴대폰 제조사에도 악영향이 미치고 있다. 특히 선두업체보다는 후발업체의 문제가 심각하다.
 
재고물량이 늘면서 제조사는 생산물량을 축소하게 됐고, 제조사에 납품하는 2차·3차 협력업체들에게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조업 전반으로 침체가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휴대폰 산업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스마트폰 수출이 크게 늘면서 IT 산업의 수출 비중은 우리나라 전체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급격한 시장 축소는 이같은 생태계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휴대폰 시장 체제는 20여년간 유지돼 왔다. 보조금 문제도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논리 속에서 해결점을 찾아왔고, 한국 소비자들은 신제품을 세계 누구보다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정부가 이용자 차별행위를 방지하고, 시장 안정화를 원한다면 급격하고 일시적인 규제보다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휴대폰 시장의 혼탁함은 가라앉히면서도 시장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현명한 조치가 요구되는 때다.
 
손정협 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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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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