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금방 묻힐거라 생각했던 특정인사의 발언이 파문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를 맡고 있는 전동수 사장 얘기다.
많은 언론이 애써 외면한 듯 보였고, 내가 작성했던 기사도 사라지고 없지만, 발언내용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고, 포털사이트에서도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불산사고의 책임문제를 묻는 질문에 "나는 돈만 벌면 된다"고 한 전 사장의 발언을 놓고, 단순한 말실수라거나 심지어 기자들이 발언의 취지를 오해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뒤늦게나마 당시 상황을 다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당시 전 사장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고 이를 기록한 기자로서….
문제의 발언은 8일 오전 10시10분쯤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로비에서 나왔다. 매주 수요일 삼성그룹 사장단회의가 열릴 때면 으레 그렇듯, 삼성전자 출입기자들은 이른 시각부터 로비에 모여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사장단을 기다렸다.
전 사장은 거의 말미에 모습을 보였고, 마침 유해물질관리법 이슈가 있던 터라 얼른 따라 붙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정확히 이런 질의응답이 이뤄졌다.(이 대화 내용은 휴대폰으로 녹취된 것이다)
-기자 : 안녕하세요, 계속 기다렸어요. 사장님.
=전 사장 : 왜?
-기자 : 이번에 불산 문제 관련해서 책임 조치는 어떻게 취해지게 될까요?
=전 사장 : 몰라.
-기자 : 아직 얘기 나온 부분이 없었나요?
=전 사장 : 난 돈만 벌면 되잖아.
-기자 :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마디만 해주세요.
=전 사장 : 뭐 권오현 부회장이 '국회에서 잘 알아서 하겠지'라고 조금 전에 이야기했대. 나도 국회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 이래야지 뭐.
짧은 순간이었지만,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고압적이었다. 건성으로 웃으며 얘기했다. 불과 얼마전 대국민사과를 하며 보였던 숙연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데스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해프닝 아니냐"는 거였다. "대기업들과 소속 임원들의 이른바 '갑질'을 비판하는 여론에 편승해 가는 건 '선정적'인 보도"라는 지적도 했다.
기자는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고, 주변 주민들까지 공포에 떨게 한 대형사고의 책임자가 한 얘기로서 너무 부적절하다'고 설득했고, 결국 기사는 출고됐다.
그러나 이 기사는 곧 삭제됐다. 데스크는 "삼성측 고위관계자가 잘못된 발언임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설명했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돌발적인 질문에 말실수를 한 걸로 봐야한다"는 설득도 있었지만, 기자들이 거의 유일하게 삼성 사장단을 만날 수 있는 그 자리는 사실상 이미 공식적인 취재현장이다.
글로벌 일류기업의 사업부문을 대표하는 CEO라면 그렇게 신경질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되는 자리였다. 더욱이 두번이나 이어진 대형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순간 마침 전 사장이 이날 삼성전자 블로그에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주의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게 되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전 사장은 "제 행동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전 사장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경황없이 대답했던 것이 큰 오해를 낳게 됐다"인듯 하다. 자신의 발언을 여전히 '실수'와 '오해'로 치부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기자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전 사장은 여전히 '사회적 책임이고 뭐고 돈 잘벌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이런 조직문화가 삼성 전체에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