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식민지 한국)③밀 자급률 1%가 주는 교훈

자급률 1% 회복에 20년 이상..99% 수입 '식량무기화'하면 속수무책

입력 : 2013-05-16 오후 1:00:00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당신은 오늘 밀로 만든 빵이나 과자 혹은 국수를 끼니나 간식으로 몇 번이나 먹었는가.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의 '2011년도 양곡 수급 상황'에 따르면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5kg이다.
 
거칠게 계산하면 한 달에 3kg, 하루 단위론 100g 정도 밀가루음식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밥 한 공기에 담기는 건조된 쌀이 90g라고 하니, 한국인은 하루 세끼 중 한끼를 밀가루음식으로 먹고 있는 것이다.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곡물 `밀`..자급률 1%는 `심각`
 
밀은 쌀에 이어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먹는 곡물이다.
 
하지만 당신이 구태여 '국산밀'을 고르지 않았다면 맛있게 씹어 삼킨 밀가루 음식의 원산지는 수입산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밀 자급률은 2%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밀의 곡물자급률은 1.0%. 식량자급률은 1.9%에 그치고 있다.
 
쌀을 제외하고 대다수 곡물의 자급률이 낮긴 하지만 밀은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밀과 비슷한 수준으로 자급률이 낮은 곡물은 옥수수 정도인데(곡물자급률 0.9%, 식량자급률 3.6%) 수입하는 옥수수의 대다수는 사료용으로 쓰인다.
 
밀은 주식이나 부식으로 수요가 많은데도 수입에 거의 의존하는 형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은 452만2000톤에 이르는 밀을 수입했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 밀은 4만4000톤에 그쳤다.
 
수입산이 국내산 보다 100배 이상 많은 것이다.
 
 
 
<자료제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밀 수입 99%’는 단순 수치 이상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는 국제 곡물 가격과 곡물 수급에 따라 국내경기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총알·포탄보다 무서운 곡물가격..다국적 곡물기업 과점은 `무기` 
 
상황에 따라선 수입밀이 총알이나 포탄 보다 강력한 무기로 국내식탁을 위협할 수 있다.
 
이는 세계곡물시장을 카길이나 'ADM(Archer Daniels Midland Company)' 같은 다국적곡물기업이 과점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1976년 다국적곡물기업 콘티넨탈이 콩고민주공화국(구 자이르)에 밀 수출을 중단해 이 나라가 식량난에 처한 일이 있는가 하면, 가깝게는 2008년 세계곡물파동으로 여러 나라가 고통을 겪은 일도 있다.  
 
이들 기업이 곡물에 적용하는 유전자재조합(GMO) 기술의 위험성은 또 다른 차원의 후과를 남길지 모른다.
 
 
 
<자료제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반대로 '밀 자급 1%' 가 담고 있는 의미도 작지 않다.
 
농식품부 등 정책당국은 국내 밀 생산이 급감한 원인으로 '농산물시장 개방'을 우선적으로 지목한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밀의 자급률은 15~20%를 유지했지만 값이 싼 수입밀이 들어오면서 국산밀을 밀어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1984년 정부가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이듬해 밀의 자급률은 0.5%로 곤두박질쳤다.
 
그 뒤로 20년 이상 밀은 '자급률 0%대'를 기록하며 사실상 맥이 끊겼다.
 
지금의 '자급률 1%'는 굉장히 미미하고 초라한 수치지만 '우리밀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 아래 사회적,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회복시킨 것이다. 
 
그게 불과 4년 전인 2009년의 일이다. 다행인 건 2009년 이후 국산밀의 생산량과 재배지역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자료제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부는 밀의 자급률을 2015년 10%, 2020년 1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미래의 사회적비용을 감안할 때 지금이라도 자급률을 높이는 게 관건이란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2008년 세계곡물파동으로 가격차가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지금도 국산밀은 수입밀 보다 2배 이상 비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산밀의 '품종 개량'으로 수입밀과 맞서보겠다고 하고 있다.
 
밀 농가 지원, 유통 개선 방안도 찾고 있지만 이제야 자급률 1%를 회복한 국산밀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늘릴 만한 뾰족한 대책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송용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우리 농정 자체가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왜 국산밀의 소비가 안되는지에 대한 진단없이 일단 생산을 늘리고 보자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사무총장은 "농가도 경제인이고 밀농사도 돈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을 경제적으로 보상해주는 게 필요하고, 밀 소비라는 것이 주로 가공제품 소비이고 식당을 통한 소비이기 때문에 2차 가공업자가 원료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생산, 소비, 유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자급률 높이기 정책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분명한 건 밀을 위시한 농산물의 경우 생물과 다름없는 불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공산품과 달리 밀 농사의 기반이 망가지면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지만 정부는 이를 간과했다가 뒤늦게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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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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