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일본의 경기 회복을 위한 성장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은행(BOJ)의 대규모 양적완화로 승승장구하던 아베노믹스가 국채 금리 급등으로 제동이 걸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24일(현지시간) 일본의 10년만기 국채 금리는 한 달 전보다 25베이시스포인트(bp) 상승(국채가격 하락)한 0.83%를 기록했다.
전일에는 장 중 1%를 상회하기도 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이는 작년 4월 이후 최고치였다.
이후 일본은행(BOJ)이 금융시장에 2조엔을 긴급 투입하며 금리는 0.85%까지 내려앉았지만 아베노믹스에 대한 환상이 깨진 시장의 우려는 여전했다. 이날의 일간 금리 변동폭은 무려 17.5베이시스포인트(bp)에 달했다.
이 영향에 전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던 일본 증시는 이날에도 장 중 한때 3%까지 밀리는 급격한 변동성을 보였다.
일본 증시의 하락이 오랜시간 미뤄왔던 차익 실현이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금리 급등의 영향을 주시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구로다 발언이 국채금리 급등의 도화선
일본의 국채 금리는 지난달 초 BOJ의 대규모 양적완화 발표 이후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 추이
(자료=국제금융센터, 뉴스토마토)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4일 종가기준으로 0.45%를 기록하며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직후 금리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이달 초부터 지난 17일까지 2주 동안에는 무려 23bp가 상승하기도 했다. 2008년 5월 이후 가장 빠른 오름세다.
이 기간 엔화 약세 기조가 강화되며 채권 시장에서 주식 시장으로 갈아타려는 '로테이션' 효과도 있었지만 엔저 심화에 대한 불만과 미국의 양적완화 조기 종료에 대한 불안 심리도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바클레이즈는 "BOJ의 막대한 자산 매입 이후 시장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낮은 금리와 낮은 변동성, 높은 유동성'으로 대변되던 일본 국채 시장이 최근에는 '낮은 금리와 높은 변동성, 낮은 유동성'으로 변하며 투자 매력이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금리의 급격한 변동에 시장은 국채 금리의 하향 안정을 유도하는 BOJ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했다.
하지만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이 같은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 22일 BOJ 통화정책회의 직후 "경제가 회복되면 국채 금리가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키치카와 마사유키 뱅크오브아메리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는 BOJ가 국채 시장의 변동성에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했다"며 "BOJ는 경제 회복과 물가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채 시장 움직임도 살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채금리 상승, 日경제에 '독'..아베노믹스 지속 여부에 주목
일본의 국채 금리 상승을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국가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월말 현재 일본의 국가 부채는 991조6000억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0%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말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45%가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재정위기로 허덕이고 있는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일본의 국채 금리가 10bp 높아질 때마다 이자 부담이 1000억엔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국채의 보유 비중에 따른 문제점도 지적된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일본 국채의 보유 비율은 외국인이 9%, 국내은행과 보험·연기금이 각각 37%, 22%를 차지했다.
따라서 국채 금리 상승시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시중은행의 손실폭이 확대돼 이들의 재무건전성이 훼손되는 등 적잖은 후폭풍이 예견된다.
이 밖에 국채 금리 급등은 민간 소비가 하락, 기업 설비투자 감소 등 경기 회복의 역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에노 야스나리 미즈호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의 금융 시장 움직임은 아베노믹스의 환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日정부, 금리 안정 필요성 인식..정책은 지속
일본 정부 역시 금리 급등에는 애써 담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경제 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부양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먼저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상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23일 "그간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예상보다 빨랐던 측면이 있다"며 "이날의 주가 하락은 중국의 지표부진과 차익실현의 영향이 컸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 경제는 꾸준히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며 "정부는 지속적인 성장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24일 의회에 출석해 "장기 국채금리의 상승은 경제와 국가 재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위한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채 금리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며 "이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은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BOJ가 국채 시장의 변동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구로다 총재는 연설을 통해 "BOJ는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유연한 시장 조작을 계속할 것"이라며 "국채 시장의 변동성을 최대한 방지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며 최근의 급격한 변동 장세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