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박근혜 정부가 4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으나 남북관계는 후퇴를 거듭하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의 3차 핵실험 및 개성공단 중단 사태로 인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전부터 북핵·개성공단 악재 잇따라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취임식도 갖기 전 위기부터 맞았다. 북한이 지난 2월12일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당장 박 대통령은 같은 달 25일 취임사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을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도전"이라 규정하면서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 될 것이다.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이어 "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한민족 모두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서로 대화하고 약속을 지킬 때 신뢰는 쌓일 수 있다"면서 "확고한 억지력"을 강조한 뒤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진전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3월19일엔 "북한의 핵 위협은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문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며 재차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북한이 3월27일 개성공단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차단하면서 경색 국면이 계속됐다.
4월3일엔 북한이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하며 우리 근로자의 귀환만 허용했다. 4월9일은 북측 근로자 5만3000여명이 출근하지 않으면서 개성공단 가동이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남북 당군 간 실무회담 개최 제의를 북한이 거절하면서 긴장이 고조됐고, 결국 4월27일 개성공단에 체류 중이던 우리 측 인원이 귀환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개성공단 정상화 의지 없나..변화 기류에도 '요지부동'
이와 같이 상황은 계속해서 꼬여만 갔으나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화보다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 비판을 받았다.
개성공단이 남북의 교류와 평화를 상징해왔지만 박 대통령은 회생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는커녕 폐쇄를 기정사실화하고, 입주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에 방점을 뒀다.
통일부가 지난달 14일 "개성공단 현지에 보관중인 원부자재와 완제품 반출 등 입주기업의 고통 해소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북한에 제의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제안을 북한은 "교활한 술책"이라고 단칼에 거절했다. 자재와 제품 반출로 입주기업의 피해를 줄이자는 것은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민주당 등 야권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며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입주기업들도 방북을 요청해 대화로 풀기를 원하는 눈치. 그러나 정부는 당국 간 실무회담이 먼저라는 입장만 재확인하고 민간인 방북 역시 불허했다.
6.15 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가 13주기를 앞두고 남측위에 민간차원에서라도 개성에서 기념식을 공동으로 개최하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이 또한 정부의 불허 방침에 좌절되는 분위기다.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주변국들과 대화를 희망한다"며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내비치는 등 변화된 태도를 보였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전문가들 "신뢰 먼저"..정치권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로 전락"
박근혜 정부의 지난 100일 동안의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총론적인 이야기만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면서 "개성공단 등에 대해 즉흥적인 대응이 아니라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질적 대화를 위한 남북간 신뢰의 기반이 부족하다"면서 "6자회담과 같은 국제공조를 통한 해결책 모색"을 주문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략의 결여와 고집의 과잉"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반복할 게 아니라 대화의 문을 적극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뢰의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장병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라고 비난했다.
장 정책위의장은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는 개성공단 사태를 거치면서 불신프로세스로 전락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남북 간에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민들 역시 강경책보다는 대화를 통한 타개책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대표 이형수)에 따르면 '주변국과의 동조 및 북한의 태도를 살펴보며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문항에 38.4%가 동조했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변화가 분명히 있을 때까지 강경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29.6%로 뒤를 이었지만 '개성공단 재계 및 6자회담 협의 제안 등 적극적인 유화책'이 향후 대북관계의 방향성으로 지목한 국민도 23.9%에 달했다.
(자료제공=모노리서치)
이에 대해 김지완 모노리서치 선임연구원은 "한반도 긴장이 상당히 오랜기간 지속되면서 강경대치를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29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101명을 대상으로 일반전화 RDD ARS 방식이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95%p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