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100일)청와대 앞에만 서면 존재감 없는 여당

입력 : 2013-06-03 오전 11:30:00
[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이한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로 참석한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권 초기, 정부가 조직화 되지 못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도록 여당이 정부 역할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새누리당의 존재감이 미약해졌다는 비판에 대한 해명이었다. 이 말은 그러나 정권 초기 여당이 무력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의원수 150명의 거대 여당 새누리당도 박 대통령의 ‘불통’에는 답이 없었다.
 
◇ 새누리당, 朴대통령 거수기 전락
 
지난 3월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미래창조과학부 관련 내용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가 출범한지 1주일이 지났지만 정부조직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내각이 제대로 출범하지 못한 가운데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사퇴하면서 초조해진 박 대통령이 강수를 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강수는 정치적으로 새누리당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박 대통령의 원안 통과 촉구가 새누리당에게는 야당과의 협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면서 새누리당은 협상 재량을 사실상 상실했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로 민주당과 물밑에서 해오던 정부조직법 협상은 무위로 돌아갔다.
 
또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민주당과 직접 담판을 짓는 형태가 되면서, 새누리당은 협상에서 제외된 꼴이 됐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대한 반발이 나왔다.
 
조해진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면 일시적으로 국민적인 인기가 오를 수도 있지만, 결국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이다”며, 정치가 실종된 듯한 박 대통령의 행보를 간접적으로나마 지적했다.
 
하지만 당의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하는 지도부는 침묵했다.
 
황우여 당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친박성향을 감안하더라도 당의 입지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지도부의 침묵은 당의 존재감은 더욱 옅게 했다.
 
▲ 대국민 담화를 마치고 고개를 숙인 박근혜 대통령 (사진제공= 청와대)
 
◇ 朴, 국정운영에 새누리당 의견 배제  
 
새누리당은 정부조직법 뿐 아니라 박 당선자 시절 인수위 때부터 소외됐다. 대표적인 예가 '불통'·'밀봉' 인사다.
 
박 대통령은 인사 1호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부터 새누리당과 소통 없이 결정했다. 
국무총리, 장관 후보 인사도 깜짝 인사가 되풀이 됐다.
 
청와대에 사전에 의견을 내 잘못된 인사를 바로잡기는 커녕 새누리당은 인사 내용도 보도를 보고 알게 되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해외 무기 중계업체 브로커 의혹, 부동산 투기와 세금 탈루 의혹 등 비리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을 철회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적임자’로 두둔하며 국회 인사 청문회가 신상 털기식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역으로 비난했다.
 
새누리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개별 의원들이 반대를 하기는 했지만, 당의 공식 입장은 “청와대가 결정할 일”이라며 김 후보자가 스스로 사퇴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표정이 역력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장관 후보자에게 모욕을 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후보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대부분 불성실한 태도로 “모른다”라고 답해 장관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에 대해 이한구 원내대표는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식물 장관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의 발언에 윤 장관은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라고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를 놓고 장관 후보자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하기에는 부적절한 언행이라는 지적이 거셌다.
 
이 원내대표도 윤 장관의 말에 감정이 크게 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 운영으로 새누리당의 존재감이 약해지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정몽준 의원은 "정치는 민주주의에서 최고의 행위고 대통령도 정치를 뛰어넘을 수 없다"며 "정치 위기를 방치하면 국회가 죽고 정부도 타격을 받는다. 정치의 빈 자리를 행정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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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