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범죄, 그 중에서도 시세조종행위(주가조작)가 기승이다. 일부 기업·증권사 관계자와 전문가 몇몇이 모여 시세조종을 하던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증권사 현직 간부, 증권방송사 PD, 회계사, 사채업자 및 조폭 등이 분업적으로 움직이면서 조직화·기업화 되어가고 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라고 불리는 국내 작전세력이 외국으로 나가 주가를 조작하거나 아예 외국기업들이 작전세력을 꾸려 국내 증시를 어지럽히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증권범죄를 일선에서 추적하는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여러 관계자들은 "주가조작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의 기업범죄에도 총수들의 배임·횡령 혐의에 주가조작 사례가 한묶음 처럼 따라붙고 있다. 개미 투자자들의 허리는 갈수록 휘고 배상받을 방법은 요원하다. 뉴스토마토는 총 5회에 걸쳐 증권범죄 중 최근 급증하고 있는 주가조작범죄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하고,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구제방법을 모색한다.[편집자 주]
[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개인투자자들을 절망에 몰아넣고 막대한 부당이익을 챙기는 각종 주가조작 행위를 철저히 밝히라"고 주문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만인 지난 4월18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법무부, 국세청 등 5개 기관은 합동브리핑을 갖고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서울중앙지검에는 문찬석 부장검사를 단장으로 하고 금융위와 금감원이 함께 참여하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설치됐다.
국내의 대형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에 최초의 증권범죄 전문 특별수사팀이 설치된 것이다.
◇'미공개정보이용'에서 '시세조종'으로 중심 이동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2012년 한 해 증권시장 불공정거래 사건을 조사해 검찰에 고발조치하거나 통보한 건수는 모두 180건이었다.
금감원이 검찰고발·통보한 사건은 지난 2009년부터 해마다 142건, 138건, 152건, 180건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지난해 금감원이 검찰고발·통보한 사건의 상당부분이 시세조종 행위(76건·42.2%)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회사운영자나 주주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 차익을 노리거나 주가 급락 직전 보유주식을 매도해 손해를 최소화하는 미공개정보이용 행위가 불공정거래 행위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39건으로 전체 증권범죄 중 21.7%로 내려 앉았다.
◇검찰이첩 사건의 위반유형별 분석(자료=금융감독원)
시세조종행위가 미공개정보이용 행위보다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주가조작 세력이 많아졌음은 물론, 우리 증시가 시세조종행위에 취약한 상태라는 반증이다. 이와 함께 시세조종행위에 속아 피해를 보는 투자자들이 훨씬 늘었음은 물론이다.
단순 주가조작행위의 양적 증가뿐 아니라 수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 최근 증권범죄의 특징이다.
◇IT기술 발달로 새로운 범죄유형 증가
검찰은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거래행위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4월 정치테마주 열풍을 악용해 인터넷 주식카페를 통한 주가조작으로 1억여원의 수익을 얻은 일당들을 재판에 넘겼다.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블로그를 개설해 회원들을 모은 후 '카카오톡', '마이피플' 등 채팅 프로그램을 이용, 조직적으로 주가조작을 실행한 것이다.
지난 1월에는 특정 주식을 매수하고 유명 증권방송에 출연해 해당 종목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수십억원을 챙긴 투자전문가가 기소되기도 했다.
최근의 증권범죄는 조직화, 기업화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통상 주가조작 범죄는 속칭 ‘쩐주, 주포, 선수, 마바라’ 등 여러 명의 공범이 철저한 공모 하에 각자의 역할분담을 통해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쩐주는 사채업자, 주포는 주도세력, 선수는 실제 매매주문을 내는 행동책, 마바라는 작전주 홍보맨을 뜻한다.
◇작전세력들 사무실 차려놓고 주가조작
이들은 주가조작을 위해 오피스텔 등지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함께 주가조작에 나선다.
혹은 각자 PC방 등의 장소에서 휴대전화나 무료 메신저 등을 이용해 의사연락을 주고받아 치밀하게 주가조작에 나서기도 한다.
통상적인 주가조작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내 금융조세조사부, 그 중에서도 금융조세조사2부가 맡아왔다.
다만, 대형비리사건 수사 도중 주가조작 혐의가 드러났을 경우나 정치인·재벌 등의 주가조작 의혹이 있을 경우는 지금은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나 서울중앙지검내 특수부가 맡아 사건을 처리해왔다.
하지만 금융조세조사부가 수사를 맡을 때도, 특수부가 수사를 맡을 때도 문제가 됐던 점은 바로 사건 처리의 속도였다.
거래소에서 주가조작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한 뒤 금감원이 조사하는 약 1년 내외의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 내에 수사를 진행해야 증거확보가 쉽다는 얘기다.
하지만 강제조사가 가능한 검찰조사와는 달리 금감원 조사는 임의 조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증거확보가 쉽지 않았다.
◇지난 5월2일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공식출범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왼쪽에서 네번째) 등 검찰수뇌부와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현판식을 갖고 있다.(사진=전재욱 기자)
◇결정적 증거 '통화내역' 관계기관 거치며 사라져
예를 들어 통화내역 같은 경우 통상 1년간 보관되는데 거래소에서 금감원, 증권선물위원회, 검찰 등 관계기관을 거치는 동안 많은 증거자료가 사라지게 된다.
증거자료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레 수사 속도가 뒤처지게 됐고, 이에 따라 사건 접수·사건 처리 수는 늘어나고 있으나 전년으로부터 이월되는 사건도 더불어 늘어나는 현상이 반복되어 왔다.
법무부는 2010년부터 처리대상 사건이 353건, 374건, 436건, 실제 조치 사건도 201건 209건, 243건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전년으로부터 이월되는 사건도 159건, 152건, 165건으로 증가추세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관계부처들이 고심 끝에 고안해낸 제도가 '패스트트랙(Fast Track)' 제도다.
먼저 금융위원회 내에는 조사전담부서를 신설해 검찰수사관, 금감원 직원 등을 파견 받아 패스트트랙 대상사건을 분류한다.
◇패스트트랙으로 검찰 강제수사 곧바로 돌입
금융위 조사전담부서에서 해당 사건이 검찰 강제수사가 즉시 필요한 '긴급사건'이라고 판단하면, 증선위원장이 바로 검찰에 수사를 통보해 곧바로 검찰의 강제수사가 이뤄지게 된다.
패스트트랙으로 넘겨진 사건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맡아 수사하게 된다.
지난 5월2일 출범 이후 합수단은 한동안 패스트트랙 사건을 받지 못했지만, 금융위·금감원의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이 마무리 된 현재는 패스트트랙 사건 수 건을 배당받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