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재판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죄•반란죄 혐의와 8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자기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이 한 짓인데 자기만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억울함이 함축돼 있다.
전 전 대통령의 ‘뻔뻔함’에 대중들이 기가 찼던 것일까. ‘왜 나만 갖고 그래’는 전 전 대통령의 특징인 '대머리'와 함께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전 전 대통령 은닉재산 추징문제와 원자력 발전소 비리문제에 대해 "새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은 난센스이다.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한 것에서 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억울함이 느껴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년 동안 자신이 정치권과 정부에 전혀 영향력이 없었던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을 이끌고 총력 장외투쟁을 벌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당내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진 후, 자기 이름을 내건 ‘친박연대’를 만들게 한 만큼 영향력이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당 지도부를 자신의 측근으로 채워 넣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박 대통령이 TV토론에서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 "내가 대통령 되면 다 하겠다"고 말한 것 처럼, 박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힘이 없었다고 착각한 것 같다.
“문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 추징금도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을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쌓여온 일", “새 정부에 전가할 문제는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전 전 대통령 추징금 문제·원전비리 문제가 지금 부각되고 있는 억울함을 박 대통령은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이런 식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 사태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 외환관리, 부실 금융사 관리 못해서 생긴 일을 왜 새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말했다면, 김 전 대통령의 지도자로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그저 "새 정부의 지향은 무엇이든 공정하고 바르게 원칙대로 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쌓여온 국민들의 불신을 과감하게 혁신하고 국민들의 불신의 벽을 신뢰로 바꾸기 위해 정부 부처를 포함해 여야 정치권 모두 힘을 합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부탁한다"고만 말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사족’이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백번을 양보해 추징금, 원전비리가 완전하게 지난 정부 책임이라고 해도 과연 지난 정부 대통령들이라고 전임자가 처리하지 못한 일을 덤터기 쓴 일이 하나도 없었을까. 새삼 국가 최고 지도자의 덕목이 아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