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준호기자] 지난 2011년 인천에서 소규모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던 P씨는 친구의 권유로 들른 PC방에서 NHN 한게임 7포커를 처음 접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게임머니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고, 친구에게 소개받은 환전상을 통해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꿨다.
그러나 P씨가 누린 ‘초심자의 행운’은 곧 ‘인생의 불운’으로 변했다.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게임에 급속도로 빠져들었고, 게임머니를 잃으면 환전상에게 현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재산을 탕진했다는 죄책감에 결국 P씨는 마약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고, 현재는 마약사범으로 전락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18일 사행성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인터넷포커, 고스톱 등 웹보드게임을 통한 불법인터넷도박 시장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최소 4조5000억원에 달한다.
게임업계가 추산하는 합법적인 웹보드게임 시장 규모가 약 5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9배에 달하는 '지하경제'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또 지난해 도박중독재단 중독예방치유상담실을 찾은 상담자 중 20%가 웹보드 게임을 포함한 인터넷도박 관련 중독증세를 호소했으며, 젊은 20~30대 상담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웹보드게임의 사행성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게임회사들의 웹보드게임 운영이 사행성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는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환전상’의 존재 때문이다.
◇’환전’과 ‘중독’의 악순환..멍드는 웹보드게임
정부 한 관계자는 “환전으로 게임머니를 현금화할 수 없다면 이용자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웹보드게임을 ‘중독’ 수준으로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결국 환전을 어떻게 막느냐가 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환전상들은 중국 등에 있는 차명 아이디 전문 판매상에게 게임 아이디를 구매해, 이른바‘오토’라 불리는 무인 게임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에서 '짱구방'(짜고치는 사기방)을 만들어 이용자들의 게임머니를 끌어모은다.
다른 이용자에게 게임머니를 판매할때는 10%의 마진을 남긴다.
◇게임아이템 거래사이트에는 웹보드 게임 머니를 사고 파는 게시물들이 쉽게 눈에 띈다. (사진=게임아이템 거래사이트 '기타물품' 게시판 캡쳐)
도박피해자 시민단체들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을 활동 무대로 하는 환전상들은 1000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환전상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오프라인 도박장을 개설해야 하는 다른 사행행위들보다 영업이 간단하고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차피 차명 아이디로 접속하기 때문에 추적이 어렵고, 적발된다 해도 오프라인 사설 도박장 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아 위험부담도 적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웹보드게임은 24시간 언제든지 컴퓨터만 있으면 접속해 즐길 수 있고, 평균 20~30%의 세금을 내는 경마나 경륜 등 합법적인 사행성 게임보다는 웹보드게임의 기대 수익이 훨씬 크다.
웹보드 게임사들은 게임 승리자에게 ‘딜러비’ 명목으로 일정 수준의 게임머니를 회수, 게임머니의 현금 가치를 유지시킨다.
게임머니를 잃은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게임에서 허용하는 간접충전 방식으로 게임머니를 사거나, 환전상에게 게임머니를 구매해 다시 게임에 뛰어든다.
이 과정은 지난 10여년 동안 계속 반복돼왔다.
◇한게임·피망 등 거대 게임포털 ‘책임론’
지난 2000년대 초부터 계속된 웹보드게임의 사행성 논란의 중심에는 웹보드시장 1위 기업인 NHN한게임이 있다. 가장 많은 이용자들을 보유하고 있어 게임머니 환전이 가장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부 시민단체들이 NHN 분당 사옥 앞에서 한게임이 ‘환전상’ 활동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또 한편으로는 검찰에 한게임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 등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한게임이 이처럼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웹보드게임을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전직 웹보드게임 운영자는 “웹보드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의 스피드와 게임머니의 수요·공급 등 운영 부분인데 이 부분에서 한게임은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라며 “지난 10년 동안 여러 게임업체들이 한게임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게임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웹보드게임 시장의 60%가량인 연간 약 3000억원 정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고,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시장을 장악해왔다.
이 외에도 네오위즈게임즈와 CJ E&M 넷마블이 각각 지난해 680억원과 6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온라인 게임 시장이 위축되면서 게임 포털들이 수익극대화를 위해, 환전상들의 활동 감시를 소홀히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피해자들 “게임사가 중독 방치” vs. 게임업계 “환전상이 문제”
전국도박피해자모임인 세잎클로버 관계자는 “웹보드 중독 문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 자신과, 끊임없이 사행성의 늪으로 유인하는 환전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많은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환전상들이 활동할 수 있게 내버려두는 게임업계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지난해 5월 검찰에 적발된 게임머니 불법 환전 사례처럼 게임 회사들도 직원이 환전상들과 관계를 가지거나, 의도적으로 방조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환전상들이 영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게임 세븐포커(좌), 피망 세븐포커(우)(사진=해당 게임사이트 캡처)
이에 대해 한게임 관계자는 “환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니터링과 아이디 이용정지 등 최대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적인 제재를 가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큰 환전상들이 중국에 있어 우리도 손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최근 마련한 게임업계의 자율규제안으로도 (환전문제 해결 등) 정부의 정책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정부가 마련하는 규제안에 대해서도 최대한 관련부처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네오위즈게임즈 관계자도 "웹보드 게임에서 환전상 문제나 불법 이용자들을 줄이기 위해 모니터링 요원을 늘리고, 포상금을 강화하는 등 매년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