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블로그)퍼스트인, 라스트아웃(First in, Last out)

입력 : 2013-07-17 오후 5:47:08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한국행정연구원이 올해 초 세종시 공무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급한 게 뭐냐는 질문에 "국회 분원이나 청와대 제2 집무실을 세종로 옮겨야 한다"는 응답이 50명을 넘긴 겁니다.
 
그동안 세종시로 청와대와 국회 기능을 일부 옮기자 주장은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 정치권이나 학계에서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산하 연구기관 조사에 의해 공무원들이 정부 기능을 세종시로 일부 이전해야 한다고 직접 대답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행정수도 만든다고 황무지에 건물 짓고 공무원들 보냈지만 좀체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것에 대한 분풀이일까요. 아니면 명실상부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충정일까요. 그보다는 입만 열면 세종시 활성화를 외치는 대통령과 정치권에 대한 반발인 것 같습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세종시 홍보(사진제공=세종특별자치시)
 
실제로 세종특별자치시 홈페이지에서 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라치면 가장 많이 보는 단어는 '행복'과 '명품'입니다. 행복도시, 명품 행정수도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언뜻 보면 얼마나 잘 지어졌고 편하기에 행복이니 명품이니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작 실상을 들여다보면 행복과 명품이라는 이름을 만들기 위해 주민과 공무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을 겪고 있는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일례로 세종시 교육지원청 일부 직원들은 청사 건물이 완공돼지 않아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낮 온도가 30도 가까이 올라가면 컨테이너 속은 찜통이 된다고 합니다. 덥고 비좁은 공간에서 업무 효율성은 물론 행복한 세종생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행복과 명품을 표방하는 도시의 현실이 왜 이런 걸까요?
 
며칠 전 영화를 봤습니다.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라는 베트남전 영화입니다. 영화는 당시 베트남에서 싸운 미군을 다뤘지만 제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 속 대대장이 전쟁터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부하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대대장은 부하들에게 "First in, Last out"이라고 말합니다. 어디에 가든 자신이 먼저 들어갔다가 맨 마지막에 나오겠다는 뜻입니다.
 
영화 속 대대장을 보며 자연스레 현실의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TV에서 본 "세종시를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전쟁에 나가기 전 훈시하는 대대장만큼 결연했습니다. 정말 박 대통령과 함께라면 세종시에서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사진제공=청와대)
 
하지만 지난해 9월 국무조정실이 세종시로 처음 이전한 이후부터의 현실은 어떤가요.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세종시에 간 것은 딱 한 번이었습니다. 그 먼 미국과 중국도 가는데 왜 세종시에는 안 내려갈까요. 대통령도 안 오는 곳인데 부총리고 장관은 잘 갈까요.
 
그러면서 아랫사람에게 세종시 활성화 안시킨다고 닦달하면 누가 말을 듣겠습니까. 혹시 박 대통령은 표정만 확고한 채 슬그머니 Last in, First out 하려고 한 걸까요.
 
최근 국회 분원과 청와대 일부 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하자 주장이 부쩍 힘을 얻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박수현 의원은 이전을 위한 법 개정을 주장했고, 최근에는 국회사무처도 세종청사에 회의장과 부대시설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역에서 세종청사까지의 거리는 약 135㎞. 세종청사에 있는 공무원들이나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나 100㎞ 넘게 양분된 행정기능에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이제 박 대통령이 나서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희망의 '세종시 조기정착을 통한 정부효율 극대화'와 '자족가능한 명품 도시 건설'을 표방한 것처럼 "세종시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강조한 말을 실천할 때입니다.
 
요즘 '귀태'라는 말을 두고 설왕설래지만, 정부와 여당이 정말 분노할 일은 박 대통령이 강조한 명품 행복도시 세종시를 감히 '세종 섬'이나 '세베리아(세종시+시베리아)'라고 부르는 것이어야 할 겁니다.
 
지난달 국무조정실이 세종시로 이전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수도권에서의 삶과 비교했을 때 세종시 삶의 질 만족도는 38.2%가 '나빠질 것', 40.5%는 '매우 나빠짐'이라고 답했습니다. 전체의 78.7%가 세종시의 삶의 질을 부정적으로 본 겁니다.
 
이런 사태야말로 그 어떤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대통령의 업무능력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박 대통령이 세종시 활성화와 공무원·주민 생활여건 업그레이드를 위해  First in, Last out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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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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