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일본판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를 창설하기 위해 관련법을 정비하고 있다. 연구와 임상시험, 신약개발 심사와 승인 등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설립해 전 일본 차원의 신약개발 지원체제를 구축하겠다!"
일본이 ‘일본판 NIH’를 적극 추진한다. 다니 슌스케 후생노동성 의정국 경제과장은 이달 초 한국제약협회에서 열린 제 11차 한-일 제약협회 국제 세미나에 참석, 일본 제약산업의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관련법 정비를 포함해 국가적 차원에서 자국 제약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정부가 주도하면서 민간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도약의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日, ‘NIH’ 설립 눈앞..세계 1위 넘본다!
NIH는 미국 국립보건원을 지칭하는 말로, 소위 신약개발 컨트롤 타워로 불린다. 일본 정부는 미국 NIH를 모태로 한 일본판 NIH 설립을 국제회의 석상에서 공식화했다.
세계 제약시장에서 3~4위권인 일본 제약이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국내 제약업계는 받아들였다.
현재 NIH는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운영될 뿐, 한국과 일본은 아직까지 이 같은 기관이 없다. 미국과 유럽이 세계 제약산업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데는 NIH의 역할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제약협회와 일본제약협회가 지난 3일 한국제약협회 대강당에서 ‘한-일 공동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미국의 NIH(미국 국립보건원)처럼 신약개발 컨트롤 타워 기관 설립 필요성이 집중 논의됐다. 현재 일본은 이 기관 설립을 위해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있다.(사진=한국제약협회 제공)
일본은 NIH 설립을 위해 내각에 관계 각료로 구성된 추진본부를 설치, 일원적인 연구 관리 실무를 담당할 핵심조직을 창설할 계획이다. 신약에 대한 연구가 국제 수준의 높은 임상연구 시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일본판 NIH’의 골자다.
◇NIH, 미국 제약을 책임지다..연구개발 지원에 총력
미국의 NIH는 전 세계 신약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신약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1위를 질주하는 원동력으로 평가 받는다. 예산과 인력을 포함해 연구개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지원을 이끌고 있다.
위상은 어떨까. 국내 제약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개발된 글로벌 신약의 경우 60% 이상이 NIH에서 주도한 R&D(연구개발)를 통해 만들어졌다”며 “전 세계 임상과학자들은 이 기관에 들어가 임상연구를 하는 게 꿈”이라고까지 말했다.
미국 NIH는 지난 1887년 ‘인류의 건강증진’이라는 목표 아래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설립됐다. 미국 보건복지부 공공보건국(Public Health Service:PHS) 산하기관 가운데 하나로, 국립의학연구기관이다. 연구와 연구지원을 주목적으로 하며, 모두 27개의 연구소 및 연구센터로 이뤄졌다.
NIH의 지난해 예산은 약 300억달러 규모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33조5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직원은 2만여명. 연구활동은 자체 인력과 시설을 이용하거나 국내외 종합대학과 의과대학, 병원, 의학 및 생명과학연구소 등과 협업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한국판 NIH’는 언제?..부처간 '이견' 에 논의조차 안돼
그렇다면 ‘한국판 NIH’는 언제쯤 설립 가능할까. 실상은 비참하다. 부처간 이견 탓에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 더군다나 현재 제약 관련 정책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로 양분화돼 있다.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와 제약업계는 ‘한국판 NIH’ 설립에 공감대를 보이고 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만큼 풀어야 할 난제도 많다. 무엇보다 NIH를 설립하는데 드는 예산 조달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부처별로 연간 예산이 짜여져 있는 터라 소위 '총대'를 메고 주도할 곳을 찾기 어렵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신약개발과 임상시험을 지원할 컨트롤타워(NIH)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부처 간의 이견 때문에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판 NIH’ 설립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정부는 부처(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보건복지부)간 이견 차이로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사진=조필현 기자)
이게 전부는 아니다.
국내 제약업계가 추락한 데는 무엇보다 기업들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불법 리베이트에 의존, 편안하게 돈벌이만을 추구하다 보니 신약개발은 뒷전이었다. 약가인하 등 소비자 중심의 정책에 대해서도 언제나 '반대'였다. 제약산업이 지니는 중요성을 간과하고 수익적 측면에서만 접근한 탓이다.
그렇다고 책임을 기업에게만 전가하기에는 정책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때릴 줄'만 알았지, '키울 줄'은 몰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일본은 제2의 도약을 꿈꾸며 국가 차원의 지원에 돌입했다. 신약 개발에 제약산업의 존망을 걸겠다는 얘기다.
부끄러운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기업들에게 지원하는 정책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규제와 견제에만 집중하는 우리와는 많이 비교된다"며 "이제 국내 제약산업도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 전에 선행돼야 할 것은 기업들 스스로의 자성이다. 국민에 등을 돌린 채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한, 규제의 칼날은 계속해서 업계를 겨눌 것으로 보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