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공공기관장 인선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전력 관련기관만 봐도 한국가스공사와 에너지관리공단 등을 빼고는 인선이 중단됐다. 원자력발전소를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두 달째 사장이 없다. 나가는 사람만 있지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당장 8월부터 전력난이 시작될 텐데 대책을 논의할 사람이 없다는 걱정마저 나왔다. 전력위기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시설을 유지·관리하는 등 중요한 의사결정 시기에 적지 않은 혼란과 계획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8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아침부터 예정도 없이 서울 강남구의 전력거래소를 찾았다. 장마 후 무더위가 시작되자 전력체계를 점검하고 전력거래소 이사장 등 전력기관 관계자들과 긴급대책 회의를 열기 위해서다.
◇8일 전력거래소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과 한전 및 발전사 사장단 등과 함께 '전력 위기극복 긴급 현장대책 회의'를 열었다.(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그러나 이날 참석자는 윤상직 장관과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 변종립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비롯 10여명뿐이었다. 산업부 산하 전력기관 20여 곳 중 절반도 안 온 셈이다.
갑자기 소집된 회의에 미처 일정을 조정 못 한 기관장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공공기관 인선이 늦어지는 바람에 당장 대책을 논의할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9일 업계 관계자는 "명색이 비상회의인데 10명도 안 되는 사람들과 무슨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겠냐"며 "절전하자, 시설 관리 잘 하자 등 했던 이야기만 또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7월25일 한진현 산업부 제2차관 주재로 열린 에너지공기업 간담회에서 나온 하계 전력난 대응방안은 ▲주요 시설 안전관리 강화 ▲기관별 긴급 대응체계 구축 ▲순찰 및 현장근무 솔선수범 등으로 매번 나오던 이야기만 반복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영평가니 국정철학이니 전문성이니 따지며 기관장 바꿀 줄만 알지 충원할 줄은 모른다"며 "공공기관, 특히 전력기관의 파급력을 고려할 때 정부가 전력난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국내 전력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한수원은 지난 6월 원전 납품비리 사건으로 김균섭 전 사장이 면직된 후 두 달 넘게 공석이다. 이에 원전 유지·관리와 예방정비, 가동 등 중요한 의사결정은 중심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또 지난 6일에는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은 김현태 대한석탄공사 사장과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까지 물러났다. 이처럼 공석인 전력기관장은 계속 늘지만 빈자리에 누가 새로 온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최근 기관장에서 물러난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김현태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왼쪽부터)(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대한석탄공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사태의 원인은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사에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국정철학과 전문성을 강조했는데 아무나 앉힐 수는 없고 밖에서 데려오자니 낙하산 논란이 일고, 안에서 뽑자니 제 식구 챙기기라는 말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출범 5개월이 넘도록 공공기관 인선이 지연된다면 인력 풀이 없다기보다 아니라 정부의 인선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국정철학 공유를 강조한 것부터가 실력보다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러는 동안 전력기관은 당장 올여름 전력수급 대책은커녕 동계와 이듬해 하계 대책은 준비도 못 하는 상황이다. 인선이 밑도 끝도 없이 늦어지면 자칫 공공기관의 경쟁력 하락은 물론 업계의 분위기에도 찬 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행정학회 관계자는 "정부가 원전 비중 확대 여부와 공공요금 인상 등 전력기관과 협조하고 의사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산하 기관이 추진할 사업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라며 "기관장 인선이 더 늦어지면 사업 추진이나 계획 실행은 고사하고 조직 기강해이와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