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는 회사원 최준영(31)씨는 IPTV로 주중에 보지 못한 주문형비디오(VOD)를 한번에 몰아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무한도전', '러닝맨' 등 좋아하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은 본방송을 놓친 경우 꼭 챙겨보는 편이다. 그런데 며칠전 IPTV 업체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지상파 방송3사의 VOD의 유료 제공 기간이 1주에서 3주로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최 씨는 "3년 전부터 다시보기 서비스 때문에 일반 케이블보다 3배 이상 비싼 IPTV를 보고 있는데, 일방적인 서비스 변경에 화가 난다"며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 개편은 없고 가격만 계속 올리려고 하는 것 같아 당장 해지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오는 12일 방송되는 지상파 프로그램부터 홀드백(Hold-back: 유료 콘텐츠가 무료로 전환되는 기간)이 3주로 늘어난다. 당초 오는 19일이면 해당 콘텐츠 VOD가 무료로 전환되어야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 플랫폼 사업자 간의 합의에 따라 다음달 2일이 돼서야 무료 시청이 가능해진다.
사실상 계약 조건이 변경됐음에도 가입자들이 약정이 남아있는 유료방송을 해지하기 위해서는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VOD 홀드백같은 경우 약관에 반영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자에 귀책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3사는 이에 대해 "기존 제도가 콘텐츠 무료 소비에 대한 기대감을 확산시켜 콘텐츠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판단에 유료방송사업자와 합의를 거쳐 무료시청 가능 시점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단기적인 혜택 축소로 시청자의 거부감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나 저작물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소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더는 미루기 힘든 불가피한 정책 변경이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본방송 시청률 저하로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부분을 VOD 수익으로 만회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3사 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하는 프로그램도 20%를 넘기기 힘들다"며 "경쟁이 심화되는 미디어 환경에서 수익성을 보존하려는 움직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료방송 사업자들도 속내는 비슷하다. 겉으로는 "지상파가 강요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VOD 홀드백이 연장되면 관련 매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눈치다. 매달 일정액을 내고 유료 VOD를 무제한 혹은 다량으로 볼 수 있는 정액제 판매가 늘어나거나 '본방'을 사수하려는 시청자가 늘어나면서 실시간 시청률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SK브로드밴드(033630)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장기적으로는 홀드백 기간이 연장되면서 VOD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이블TV 업계의 한 관계자도 "모든 유료방송 플랫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라 반발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더 다양한 VOD 요금제를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입자들은 분통을 떠트리고 있다. 소비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소송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사업자 사이의 합의로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변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모든 문제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약관에 명기돼 있지 않더라도 VOD 홀드백을 1주일로 생각하고 가입한 사람과 서비스 제공 사업자 간의 신뢰관계가 깨진 것"이라며 "소송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에도 홀드백 연장에 대한 소비자 집단분쟁이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지상파 본방송 12시간 경과 후부터 VOD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광고로 가입자를 모았던 하나TV는 MBC 콘텐츠의 VOD 홀드백을 1주일로 늘린다고 밝혔다.
이에 하나TV 가입자 616명이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내자 한국소비자원은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나TV는 남은 약정 기간동안 이용자가 VOD를 유료로 구매할 경우 해당 금액을 포인트로 환불하고, 해지를 원하는 단품 가입자의 경우 위약금을 부과하지 말라는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규제기관이 소비자 보호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주홍 국장은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벌칙 규정을 만들어 재허가시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감점을 하는 등 적극적인 소비자 구제 정책이 필요하다"며 "미래창조과학부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런 안전장치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관할 기관인 미래부와 방통위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법 상 금지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VOD 홀드백 연장은 약관 변경이나 가입자 동의 없는 요금 부과 사안이 아님을 밝혀둔다"며 "이에 대한 행정 조치가 가능하기 위해선 미래부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부 역시 "행정 권고나 지도 같은 경우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라며 "VOD는 약관에 방영돼 있지 않고 기본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가 선택하는 부가서비스 개념이기 때문에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