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호무역주의? 삼성의 특허전략 실패!"

<특허전쟁> 저자 정우성 변리사 인터뷰..보호무역주의 정면반박

입력 : 2013-08-16 오후 12:53:08
[뉴스토마토 황민규·신지은기자]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에 '보호무역주의'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3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애플 제품 수입금지 권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다.
 
이로 인해 2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져온 양사의 특허전은 변곡점을 맞게 됐고, 국내외 언론은 미국의 자국 편향적인 무역정책에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26년 만에 이례적으로, 그것도 독립성이 보장된 준사법기관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마치 미국 정부가 애플을 비호하고 타국 기업에는 불합리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주요 무기로 내세워온 '표준특허'의 본질적 특성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정반대 주장도 일부 제기된다. 삼성이 애플과의 특허소송에서 열세로 몰린 원인을 '보호무역주의'로 지목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해 EU 집행위가 삼성의 표준특허 공세에 '반독점'이라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현재 일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논란은 미국의 일방주의적 통상정책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무조건적 반발로도 해석된다. 삼성 보호를 통해 가져올 이해 변수도 충분히 고려됐을 수 있다.  
 
<특허전쟁>의 저자인 정우성 변리사는 지난 14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애플 간 소송에 미국 특유의 보호무역주의가 개입됐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삼성이 수많은 특허들 중 표준특허를 이슈로 삼아 공격에 나섰다는 점이고, 결국 부메랑이 되어 위기로 돌아온 것"이라고 책임을 삼성 탓으로 돌렸다.
 
◇<특허전쟁> 정우성, 윤락근 지음.(사진출처=에이콘출판)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는 삼성 특허 전략의 실패"
 
정 변리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삼성전자의 특허전략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일찌감치 휴대폰 산업에 진출한 만큼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애플이 휴대폰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기술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설명.
 
아이폰의 성공을 지켜본 삼성전자가 갤럭시S 시리즈를 내놓으며 경쟁자로 등장하자 애플은 삼성이 아이폰의 디자인과 소프트웨어(SW), 유저인터페이스(UI) 등을 베꼈다며 '카피캣'으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당시 삼성은 결국 애플이 '크로스 라이선스'(교차특허) 협상에 응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압도적인 표준특허 보유량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표준특허는 미국, 유럽 등 주요시장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이는 세계 IT산업의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정 변리사의 분석에 따르면 통상 제조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는 '배타적 독점권'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하드웨어 중심 특허전략은 양적 특허 확대 후 이를 이용해 시장을 주도하는 다른 경쟁사와 크로스 라이선스를 하는 데 있다"며 "크로스 라이선스에서는 보유량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는 장벽을 세운다. 이게 바로 제조업 특허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글, 애플 등 인터넷,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IT업계에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두 기업이 활용하는 콘텐츠는 개방성을 화두로 삼고 있다. 이 개방성은 이른바 에코시스템(생태계) 형성에 주된 동력으로 작용하며, 소비자들과의 직접 소통을 통해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마이크로소프트, IBM, 노키아 등 IT·전자업계 터줏대감들이 '표준특허'를 들고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제조업 기반이 강한 이들은 대다수의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구글, 애플 등의 회사가 제조업 영역까지 직접 진출한 이상 충분히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 행정부가 표준특허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즈음부터다.
 
◇<특허전쟁>의 저자 정우성 변리사.(사진=뉴스토마토)
 
정 변리사는 "본질적으로 표준특허는 협상의 무기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른 기업과 차별하지 않고 라이선스를 주는 데 핵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삼성전자와 애플 간 소송의 경우, 삼성이 애플에 대한 협상 카드로 표준특허를 들고 나온 것부터가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또 "표준특허 관련 협상에서 프랜드(FRAND) 규정이 있는데, 요약하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라이선스 의무를 지킨다'는 것"이라며 "표준특허로 국제무역위원회에서의 수입금지를 거부하는 절차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명시는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도 이 같은 사안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IT업계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특허괴물'(실제 생산을 하지 않으면서 표준특허를 대량으로 구매해 관련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사용료를 징수하는 특허전문기업)에 대해 수차례 강도 높은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 변리사는 "오바마 행정부는 특허제도를 손보겠다는 의지가 강한데 최근 거부권 행사도 그 의지의 한 축으로 봐야 한다"며 "특허괴물들의 소송을 원천봉쇄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남용하는 것은 견제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표준특허를 명분으로 애플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를 승인했다면 이후 특허괴물들의 위력을 배가하는 격이 된다.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었다는 얘기다.
 
◇표준특허에 대한 美 정부 입장은 한국에 득일까, 실일까
 
미국 정부가 표준특허에 대해 확실한 거부 입장을 표명한 것이 오히려 국내 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 변리사는 "오바마 행정부의 특허제도 개혁에 관한 일련의 프로세스는 수출산업 위주의 우리나라에게 분명 우호적인 환경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시장 진출을 원하는 스타트업에게는 더욱 유용한 소식이다. 통상 스타트업 기업이 다국적 기업의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100억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여기에 ITC 소송까지 함께 진행될 경우 비용은 두 배로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체적으로 특허제도를 손보게 될 경우 우리 기업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삼성전자에게 불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정 변리사는 "삼성전자만 표준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에릭슨과 특허 분쟁중인데 에릭슨은 삼성전자에 대해 표준특허 침해를 제기한 상황이기 때문에 소송에서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가) 삼성에 유리한 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선진국을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는 특허 분쟁의 양상에 따라 삼성을 포함한 국내 대다수 기업의 특허 전략에도 인식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전자의 경우 각국 특허제도 동향에 대해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 변리사는 특허에 대한 삼성전자의 인식 전환을 요구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많은 양의 특허를 보유한 후 상대 쪽의 공격이 있을 시 표준특허로 반격을 취하고, 이를 매개로 어느 정도 협상이 무르익으면 크로스 라이선스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전략을 구사해왔지만 삼성과 애플 간 소송은 이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끝으로 정 변리사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에 대해 경각심을 나타냈다. 그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생산적인 전략을 짤 수 없다. 냉철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면서 우리기업, 우리나라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는 게 좋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며 "진행 중인 분쟁을 감정적으로 볼 필요 없이 손익관계를 냉정히 따져 봐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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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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