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 900억 예멘 개발 손떼..해외 자원개발 딜레마

입력 : 2013-08-19 오후 5:33:52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한국석유공사가 예멘 4광구 탐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기대보다 생산량이 적고 사업성도 불투명해서다. 그동안 석유공사 등 일부 공기업은 해외 자원개발을 핑계로 방만한 경영을 하며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은 터였다.
 
이에 이명박 정부에서 우후죽순 추진된 공기업의 해외 개발사업이 정리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정부가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너무 무신경하다는 우려도 크다. 당장 중국과 일본은 정부 주도로 해외 진출을 적극 서두르기 때문이다.
 
19일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예멘 4광구 탐사·개발사업 철수를 의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광구 개발사업은 석유공사가 지난 2007년부터 현대중공업(009540), 한화(000880) 등과 합작해 총 8150만달러(906억원)을 쏟은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석유공사는 애초 예멘 4광구의 석유 매장량을 약 3500만배럴로 추정했다. 그러나 막상 개발을 시작해보니 기대와 달리 석유 생산은 하루 102배럴에 불과해 최초 예측량의 0.5%밖에 안됐다. 막대한 자금투자에 비해 수익은 사실상 제로였던 셈이다.
 
지난 5월에는 한국가스공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북극권 개발사업인 캐나다 가스전 개발을 포기했다.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개발붐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폭락해서다. 한국동서발전 역시 최근 자메이카의 360㎿ 복합화력발전소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처럼 공기업이 하나둘씩 해외 개발사업에서 발을 빼자 처음부터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개발에 뛰어드는 바람에 국민 세금만 낭비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해외 개발사업은 자원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에 의존한 투자위험도가 높은 사업"이라며 "일부 공기업은 이명박 정부의 해외 개발사업 독려에 따른 실적 올리기와 생산량 확보와 급급해 수익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동서발전의 해외 자원개발사업 운용 현황. 왼쪽부터 마다가스카르, 괌, 칠레 사업단지(사진제공=한국동서발전)
 
석유공사의 900억 투자 실패에서 보듯 일부 공기업은 해외 자원개발에 너무 많은 예산을 쏟는 바람에 기업의 재무건전성에도 부담을 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공기업들이 자원개발에 너무 많은 체력을 낭비했다"며 "일부 기업은 부채비율이 높고 재무상태가 취약하기 때문에 당분간 정부 차원에서 사업 우선순위와 수익성을 재검토하는 등 정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석유공사는 해외 자원개발에 집중하는 동안 2008년에 5조5000억원이었던 부채가 2012년에 17조9800억원까지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2000억원 흑자에서 900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결국 2012년 공공기관평가에서는 꼴찌인 E등급을 받았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 관계자는 "예멘 철수에 따른 투자 손실은 아직 공식적으로 집계가 안 됐다"며  "현재 사업철수 전담팀이 구성됐지만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온 게 없다"고 언급을 피했다.
 
한편,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부실한 해외 자원개발을 정리하는 것만큼 정책 지원을 통해 해외 개발을 꾸준히 돕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내 여건에서 신재생에너지와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면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해외자원개발협회 관계자는 "자원개발 특성상 성과가 나올 때까지 정부가 지원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은 경기침체 분위기 속에서 前 정부의 사업방향을 조정하는 추세"라며 "단기적 성과보다 국가적인 장기 목표 아래 자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 차세대 에너지원 개발과 에너지 시장 선점을 목표로 적극적인 해외 자원개발을 시도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대응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의견이다.
 
한국무역협회와 에경원 자료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은 올해만 북미의 셰일가스 개발업체를 인수하고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나 엑슨모빌과 합작을 통해 해외 자원생산 거점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정지원과 정보제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익성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과정과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뛰어든 후 재정적자를 보전해주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획기적인 재정지원 없이는 자원개발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정부는 자원보유국이 우리 기업을 도울 수 있도록 국가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자원개발에 관한 고급정보를 수집해 기업에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자원개발협회 관계자 역시 "올해 공기업이 잇따라 해외에서 손을 떼는 모습을 보이면 해외 현지에서 우리 기업의 소문이 좋지 않게 나고 당분간 진출하려는 기업도 자취를 감출 것"이라며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알짜배기를 지원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노력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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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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