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허일병 사망 원인은 자살..수사 부실 인정 3억 배상"

입력 : 2013-08-22 오후 3:26:05
[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허 일병 의문사 사건'의 사망 원인을 타살로 판단한 법원의 판단이 뒤집혔다. 이 사건을 담당한 항소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자살한 것으로 결론짓되, 당시 군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를 인정해 이례적으로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인정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9부(재판장 강민구)는 22일 허 일병의 유족인 허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국가는 유족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인과 신체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의 발사자세를 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같은 자살 사례 등이 있다"며 'M16소총으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을 격발해 자살할 수 없으므로 타살'이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 '허일병의 사체를 이동해 자살로 가장했다'는 1심과 의문사위원회의 판단에 대해 "머리에 있는 혈핵 혼 방향 등을 볼 때 이동의 흔적이 전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핵심 증인이 처음에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다가 의문사위원회에서 유도심문에 의해 '허일병의 사망원인은 타살'이라고 양심선언을 했다"며 진술의 신빙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밖에 재판부는 총상의 색깔이 다르고, 핏자국을 씻으려고 물청소를 실시했으며, 총성은 2발밖에 들리지 않았다는 등의 원고 측 주장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같은 점을 종합해 허일병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결론지었으나, 당시 군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를 인정하고 유족인 부모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외부와 엄격히 격리돼 있는 군대 내 사고에 대해 군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 규명 의무는 일반 수사기관보다 더 높다"며 당시 사건 조사가 현저하게 부실히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허 일병의 총상이 3군데이므로 탄피도 3개이고 총성도 3번인 것이 당연하지만 탄피와 총성이 각각 2개씩밖에 없었음에도 헌병대 수사는 추측만으로 마무리됐다"고 지적했다.
 
또 "당연히 핏자국 등을 사진촬영해야 하지만 헌병대 수사기록에 현장사진이 나타나 있지 않고, 당시 부검의도 타살을 의심해야 함에도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헌병대의 현저히 부실한 수사로 이 사건이 30년 동안 의문사로 남겨진 점과 군대에 가족을 보낸 유족의 고통, 군대 내 사고의 특징 등을 종합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단 "허일병의 형제와 자매는 이 부분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아 부모에게만 위자료를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허원근 일병은 1984년 군에 입대해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중 그해 4월2일 총상 3발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육군 헌병대는 허일병이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고, 육군 범죄 수사단과 육군본부 법무감실이 1990년과 1995년 각각 이 사건을 다시 조사했으나 고인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라고 결론내렸다.
 
국방부는 2002년 허 일병이 자살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최종적으로 발표했으나, 의문사의원회는 2004년 허일병의 사망 원인을 타살로 발표했다.
 
이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11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의 사망 원인은 은폐와 조작에 의해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라며 유족에게 9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법원종합청사(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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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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