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연금만큼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좌우할 이슈가 어디 또 있을까? 미래지향적 연금 비전을 설정한 국가는 미래와 행복을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 세대의 탐욕만이 덕지덕지 묻어날 경우 복지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역습으로 가혹한 대가를 피할 수 없다.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 지는 복지천국을 자랑하던 유럽과 미국, 일본의 현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뉴스토마토는 세대통합과 국가의 미래 행복을 위한 연금 제도의 조건과 미래를 3부에 걸쳐 심층 분석해본다. (편집자)
#1. 올해(2033년)로 65세가 되는 나연금 씨는 올해 해외 여행을 계획 중이다. 올해부터 매월 국민연금 119만원을 더 받게 됐기 때문이다. 60세에 직장에서 퇴직한 나 씨는 이후 퇴직연금 월 97만원, 개인연금 월 85만원으로 기본생활을 유지해 왔는데, 65세가 되면서 국민연금을 타게 돼 매월 100만원 가량의 여윳돈이 생기면서 꿈꾸던 여행을 결심하게 됐다.
#2. 또 다른 65세 안연금 씨는 60세부터 받아 온 80만원 가량의 조기노령연금이 수익의 전부다. 50세에 퇴직하고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해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접었다. 직장생활할 때 꾸준히 부어온 개인연금도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미 해약했다. 그나마 60세부터 80만원 남짓한 돈을 조기노령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어서 기본적인 생활은 유지해 왔지만 손주들 용돈도 제대로 줄 수 없는 형편이다.
◇연금이 뭐길래
국민연금 수령나이가 65세로 늦춰지는 현재 나이 45세(1969년생)의 두 중년 남성의 20년 이후를 미리 예상해 봤다. 예상 기대수명은 현재 남성의 평균수명인 77세, 예상 은퇴연령은 60세, 예상 연물가상승률은 3.1%, 예상 연투자수익률은 3.55%, 예상 연소득상승률 4%를 가정했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등 3층 연금을 탄탄하게 쌓아온 나연금 씨와 연금탑을 제대로 쌓지 못한 안연금 씨의 노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나연금씨의 금빛노후를 실현시켜 준 연금은 대표적인 은퇴준비수단이다. 나 씨는 결혼할 때부터 노후를 자식에게 맡길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았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었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 씨는 대신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적 수명이 이어지는 동안 자산의 연금화에 매달렸다. 수명연장으로 돈벌이 없이 소비해야 하는 노후기간이 길어지면 달리 방법이 없다.
최대한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연금을 가능한 한 많이 쌓아놓는 게 노후준비의 기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을 도입한 지 20년이 넘고 최근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생)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연금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은퇴 후 행복은 연금쌓기 나름
우리나라 연금의 역사는 서구에 비해 일천하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내에 기본적인 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1988년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개인연금(1994년), 퇴직연금(2005년)을 도입하며 국제기구에서 권고한 다층노후소득보장 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들 3개 연금을 이른바 ‘3층연금’이라고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저소득 노인층을 위한 기초노령연금도 지난 2008년 도입됐다.
요즘은 주택연금, 월지급식상품까지 합쳐 5층연금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다달이 받던 월급이 사라지고 나면 기댈 것이라곤 연금뿐인 노후에 3층 연금집보다 좀 더 높은 집을 지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은 "요즘처럼 인생 후반기가 길어진 시대에서 하나의 연금에 의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리스크를 분산하듯이 부담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3층 혹은 그 이상의 연금탑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령자 절반 '연금은 먼나라 얘기'
되도록 보유 자산을 연금화해놓아야 노후가 행복하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연금체계는 구축됐지만 충분하게 연금을 쌓은 고령층은 별로 없다.
현재 고령층(만 55~79세) 가운데 국민연금이나 기초노령연금, 개인연금 등의 연금을 받는 사람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층 중 지난 1년간 연금을 받은 경험이 있는 비율은 46.9%(511만5000명)로 집계됐다. 고령층 절반에 연금은 전혀 다른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연금 수령액 역시 터무니 없이 낮아 소득보장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연금수령자의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39만원이었고, 81.8%는 월평균 수령액이 50만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10만원 미만을 받는 경우가 36.4%로 가장 많았다.
연금 수령액이 150만원 이상인 수령자는 단 7%에 불과했다.
성별로는 남자의 경우 10만~25만원이 24.8%로 가장 많았고, 여자는 10만원 미만이 51.8%로 절반을 넘어 여성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박준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연금제도센터장은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했지만 실질적 노후소득 보장여부는 의문"이라며 "현재 은퇴가 진행되고 있는 베이비부머의 경우 전체 근로기간의 상당부분이 연금 제도가 구축되기 이전이어서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나 씨와 같은 이상적 노후시나리오가 실현되기 위해 연금제도의 안정적 설계와 개인들의 노후 준비를 위한 일자리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