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전력대란 고질병 진단..정부 나태 속 국민만 고통

입력 : 2013-08-26 오후 8:24:03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앵커 : 매년 여름철이면 전력대란을 막기 위한 전 국가적 캠페인이 이젠 일상화됐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고 국민들은 찜통더위 속에서 고통을 언제까지고 감내해야 하느냐고 아우성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의 전력사용이 아니라 정부의 전력정책 실패, 전력공급체계 자체가 모순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나라 전력시스템 전반을 짚어보고 '전력대란 고질병'을 극복할 방안도 함께 진단해봤습니다. 경제부 최병호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기자 안녕하세요. 정부는 8월 말까지를 전력수급비상대책기간으로 정하고 국민에 절전을 계속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전력낭비가 전력난의 진짜 원인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은데요. 도대체 진실은 무엇입니까?
 
기자 : 네, 사실 정부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이면 전력난이 온다며 국민에 절전을 당부하고 나섰습니다. 국민의 전력낭비가 전력위기의 주범이라는 건데요. 그러나 이번에 취재를 통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정부의 전력정책 실패, 우리나라의 전력체계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이를테면 정부의 전력셈법이 문제입니다.
 
우선 수요예측 실패를 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만들어서 장래 15년 동안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전력수급 대책을 마련합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한 오차가 있는 겁니다.
 
전력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02년부터 마련한 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전력수요를 연평균 2.5%~5%대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전기 소비증가율은 7%대를 기록해 정부 예측과 실제 수요가 2배 넘게 차이를 보였습니다.
 
특히 블랙아웃이 닥쳤던 2011년 당시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치는 6650만㎾였지만 실수요는 7300만㎾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도 정부는 수요를 6700만㎾로 내다봤지만 실제는 7600만㎾나 됐습니다.
 
전력수요 예측이 안 되니까 전력수급에서도 문제가 생기고 장기적으로 보면 발전소 확충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사업에서도 차질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앵커 : 네, 전력수요 예측에 실패했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가장 기본적인 계획부터 잘 못 잡았다는 말이네요. 또 다른 것은 없습니까?
 
기자 : 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전기요금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원가대비 가격자체가 워낙 낮은 걸로 유명한데요. 한국전력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국내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의 원가회수율은 각 92.8%, 89.4%였습니다. 전기 100원을 팔면 한전은 90원만 얻는 셈이다. 단위열량당 가격도 전기는 1030.7달러지만 등유는 1696.0달러로, 조금이라도 싼 전기를 쓰게 된 구조입니다.
 
이처럼 원가 대비 가격 자체가 워낙 낮고 다른 연료에 비해 상대가격까지 저렴해서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전기소비량은 2012년 기준 9197㎾h이나 됐습니다. 이는 일본(7868㎾h)은 물론 OECD 평균(7617㎾h)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정부가 한전의 전력독점을 깨고 전기를 더 싸게 공급한다며 도입한 민간발전사 전력판매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 기대와 달리 민간은 한국중부발전 등 5개 발전자회사보다 전력은 적게 생산하면서 판매수익은 더 많이 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민간발전사의 전력판매를 도입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발전자회사의 총 전력판매량과 판매가격은 216만5162㎿와 153조5984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포스코에너지와 GS EPS 등 민간발전사는 12만8769㎿를 판매하고 15조4637억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간이 한전에 판 전력량은 전체 전력의 3.5%지만 판매금액 점유율은 6.9%로 판매전력 대비 2배의 수익을 올린 셈입니다.
 
판매단가도 발전자회사는 연평균 ㎾h당 71원이었지만 민간은 120원으로 연평균 가격 변화율과 판매량을 비교하면 발전자회사가 그동안 190.3%의 수익을 올리는 동안 민간의 수익률은 무려 7710.9%나 됐는데요.
 
이런 시장구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처럼 전기요금 적자는 한전이 책임지고, 이윤은 발전사가 챙기는 구조는 국민 세금을 민간발전사에게 바치는 격"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앵커 : 네, 앞에서 전기요금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사실 전력위기 때마다 항상 언급되는 게 전기요금 싸서 국민이 전기를 함부로 쓴다는 전력낭비 타령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합니다. 제 주위를 봐도 집집마다는 비싼 전기요금 아까워서라도 절전에 나서고 있는데요, 과연 국민의 전력낭비가 전력난 주범 맞습니까?
 
기자 : 네,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싼 전기요금과 높은 전기사용량을 근거로 국민의 전력낭비가 전력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앞에서도 봤듯 정부가 제시하는 각종 통계와 연구단체들의 자료를 보면 정부 주장이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만 보면 국민의 전력 과소비가 블랙아웃의 원인처럼 보일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전력사용 '인구'가 아니라 '용도별'로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용도별 전력사용량을 분석하면 전기 먹는 하마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산업계입니다. 실제로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용도별 전력소비량은 산업용(197억7000만㎾), 상업용(87억4760만㎾), 가정용(47억9394만㎾) 순이었습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1.43배 싸지만 사용량은 4배나 더 많은 셈인데요, 이는 국내 1인당 가정용 전력사용량은 1088㎾로 미국(4508㎾)과 일본(2189㎾)에 비해 낮지만, 산업용은 3762㎾로 미국(2640㎾)과 일본(2070㎾)보다 높은 기이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가격 차이 때문에 가정에서는 비싼 전기요금 내기 싫어서라도 절전이 일상생활화 됐지만 산업계에서는 싼 전기요금이 곧 비용감소의 요인이기 때문에 전기를 펑펑 쓰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산업용에 싼 전기요금을 매겼을까요. 산업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가 1960년대부터 산업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며 전기요금을 싸게 제공한 게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앵커 : 네. 진짜 전력난의 주범은 산업계인데 비난의 화살은 국민에게 온 셈이군요. 민간발전사 문제도 심각해 보이는데요. 특히 한전 자회사는 적자인데 민간만 이득을 보는 구조는 애초에 전력시장 독과점을 깬다는 시도 자체가 실패한 경우 아닌가요?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습니까?
 
기자 : 네, 잘 지적해 주셨는데요. 이번에 취재하면서 정부의 안이하고도 괴상한 전력셈범은 가장 크게 드러난 부분이 바로 민간발전사였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1년에 한전의 전력시장 독과점 구조를 없앤다며 민간발전사의 전력판매를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SK E&S와 포스코 에너지, GS EPS 등 대기업 계열 전력사들이 전력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전력시장이 경쟁체제로 가면서 전력공급원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한전 발전자회사들이 가격상한제인 정산상한가격제도와 전기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여론에 묶여 가격을 못 올리는 사이에 민간 발전사들은 가격을 빠르게 올렸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02년부터 10년 동안 민간발전사들이 전기판매단가를 평균 73.5원 올리는 동안 발전자회사들은 40원 인상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민간발전사의 초과이익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에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원가회수율이 100%가 안 돼 전력당국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민간발전사가 판매단가까지 올리다 보니까 한전의 적자는 계속 쌓여만 갔습니다. 지난해 기준 한전의 적자는 무려 2조6929에 달했습니다.
 
앵커 : 네, 전력당국의 적자가 심해진다면 전력시설 유지보수 등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최근 자주 일어난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도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기자 : 네, 맞습니다. 사실 민간발전사가 높은 단가에 전기를 파는 것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전기판매값도 가격이라면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정말 문제는 전력당국이 계속 적자를 보는 상황이 되면서 전력시설 유지 보수 등에 투입할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또 한전 등은 판매가격이 높은 민간발전사 전기 대신 비교적 값이 싼 발전자회사의 전력을 쓰려고 하는데요, 이것이 발전자회사가 가진 화력발전소 등의 과부화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정부가 전력위기의 고비라고 봤던 지난 8월 둘째 주에 일산 열병합발전소와 당진화력발전소 등 발전소 3기가 한꺼번에 운전을 멈췄습니다. 그동안 무더위로 치솟는 전력수요를 막는다며 정부가 무리하게 발전소를 가동했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화력발전소 정지처럼 시설고장 등으로 발전소가 한꺼번에 가동을 멈추면 블랙아웃에 버금가는 대규모 전력난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 특성상 산업용 전기를 아끼는 데는 한계가 있기 정부는  전력당국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에 절전을 종용하고 있다며 정부가 민간발전사의 이득과 산업계의 전력사용을 챙겨주는 대신 국민에게는 절전 고통을 강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업조차도 투입예산 대비 적자규모가 커지면 사업을 정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전력당국이 아무리 정부의 지원을 받더라도 투자 보수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전력서비스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정부의 전력시장 개선을 위한 정책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앵커 : 네. 지금 이야기를 해보니 전반적으로 문제가 굉장히 많네요. 그런데도 정부는 오직 국민에게 전기 아껴쓰라고만 하고 있구요. 이러니 전력난 극복이 제대로 될 리 없겠습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요?
 
기자 : 네. 일단 가장 시급하고 또 많이 다뤄지는 게 전기요금 현실화. 즉 전기요금 인상입니다. 일단 전기 아까운 줄 알아야 전기를 덜 쓴다는 주장에는 정부나 국민할 것 없이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전기요금을 얼마나 어디부터 올리느냐 입니다.
 
특히 현재 가정은 전기요금 누진제로 요금폭탄을 받지만 산업계는 수십 년 넘게 특혜성 요금을 받는 불공평한 상황에서는 단순히 전기요금 인상한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관건은 산업계의 전기요금 대폭 인상을 핵심으로 한 전반적인 요금 현실화라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소비자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기요금을 전반적으로 올리는 요금 현실화가 이뤄져야 하지만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는 산업계에 대한 특혜이자 전기라는 공공재의 형평성을 해치기 때문에 요금을 개편한다면 산업계부터 손을 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앞에서 앵커께서 지적한 민간발전사 문제도 있는데요. 현재발전자회사와 민간발전사로 나뉜 전력시장의 어중간한 구조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전력시장의 칸막이를 없애야만 한전의 적자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력공급 문제도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봤듯 전력수요 예측이 어긋나면서 발전소 확충에도 차질이 생겼는데요. 수요예측 실패는 곧 전력시설 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수요는 8050만㎾로 올해 8월1일 기준 국내 발전설비용량 8563만㎾과 500만㎾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발전소 한 두기가 고장 나면 바로 전력난으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물론 정부는 미래 10년 이후의 경제상과 미래를 예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그보다는 정부가 장기적 관점에서 전력정책에 원칙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전력체계는 저효율, 과소비 구조라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안정적 전력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를 해결하면 정부가 단기성과나 사업 활성화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국민에 에너지 복지를 제공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더 이상 한정된 전력공급량을 가지고 전력 배분과 절전을 고민하기보다 충분한 전력공급량을 확보한 다음에 수요관리에 노력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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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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