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 시(市)가 빚더미에 허덕이다 결국 파산했다. 미국 지방정부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디트로이트시의 몰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각종 연금과 건강보험 등 과잉복지가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디트로이트에서 연금으로 생활하는 퇴직자는 현역의 두 배를 웃돌며, 매년 거액의 적자를 보면서도 예산의 3분의 1 이상이 퇴직공무원의 연금과 의료보험에 지출되고 있다.
시계를 좀 더 앞으로 돌려 유럽발 금융위기를 몰고 온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사례도 짚어보자. 스페인과 그리스는 과도한 연금으로 파산 위기에 직면한 대표적인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반면교사다.
◇연금지출 급증에 국가경제 '휘청'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부담 대비 높은 연금지출로 정부 재정 불안정화를 불러왔다. 퍼주기식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치우칠 경우 제도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은퇴 이후 은퇴 전 15년 평균급여의 85%를 연금으로 받는다. 그리스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무려 95%에 달한다.
이처럼 관대한 연금제도를 운영하면서도 남유럽 국가는 보험료 미납이나 짧은 가입기간 등으로 인해 65세 이상의 노인빈곤율이 북유럽에 비해 2배 이상이다. 때문에 공적연금이 재정불안정의 주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연금, 보건의료 등 현금으로 지급되는 사회복지비가 절대적으로 많다. 남유럽은 이른바 '퍼주기식 복지'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에 개혁에 대한 저항이 심했다. 결국 개혁에 실패했고 재정위기라는 결과에 이르렀다.
연금 개혁을 이야기할 때 북유럽 국가 사례들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이들 국가는 1990년대에 공적연금의 지급액을 삭감하고 의무가입 사적연금을 도입하는 등 일찌감치 개혁을 서둘러왔다.
신기철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는 "남유럽 국가는 공적연금 단일체계로 운영되고,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고, 사적연금이 보완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북유럽 국가들은 공적연금의 지급액을 삭감하고 의무가입 사적연금을 도입하는 등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이 조화롭게 보완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도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 사례에 대한 벤치마킹에 한창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리스 전철을 밟고 있다"며 "과감한 연금개혁과 일자리 창출 등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사회적 합의로 과감한 연금 개혁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꼽히는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적용되는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세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을 운영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0년에 걸친 논쟁을 거쳐 1998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전 노인을 대상으로 일정한 금액을 동일하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없애고 소득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안정화를 꾀했다.
소득비례연금을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전환하고 보편적 기초연금은 폐지하는 한편, 빈곤한 연금수급자에게 선별적으로 지급되는 최저보증연금으로 대체했다. NDC 방식은 개인이 보험료를 낸 실적에 비례해 경제성장률만큼의 이자율이 적용되는 구조다. 실질적으로는 부과방식으로 운영되는 공적연금에 확정기여 연금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이는 공적연금의 재정적 지속성과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적정보장에서 최저보장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의 개혁은 노르웨이의 공적연금 제도 개혁에 영향을 미쳤고, 최근 일본의 공적연금 제도 개혁안에서도 집중 논의되는 등 다른 국가의 연금 개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사적연금 역할 구분돼야"
우리보다 앞서 늙은 선진국들이 후한 연금에 과감하게 메스를 댈 수 밖에 없는 것은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연금재정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다.
주요 선진국의 공적연금 개혁을 살펴보면, 공적연금 급여 축소에 따라 사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미 OECD 17개국의 사적연금 가입은 강제(호주, 칠레 등) 또는 준강제적(덴마크, 네덜란드 등)이며, 이외 6개국의 경우는 임의가입이지만 생산가능인구의 40% 이상이 가입할 정도로 보편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공적연금의 기능을 약화시켜왔다. 공적연금은 저소득층에 집중토록 하고 나머지 계층의 상대적 불리함을 사적연금 통해서 보장받게 했다.
독일은 지난 2001년 정부가 가입자에게 정액의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사후정산식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연금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리스터연금 도입하면서 사적연금을 강화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연금 연계강화를 원칙으로 최저노후소득보장은 공적연금, 그 이상의 소득보장은 사적연금이 담당할 수 있도록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며 "저소득층은 공적연금 중심으로, 중위소득 이상에서는 사적연금 중심으로 공사연금 제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