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사진=뉴스토마토 DB)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검찰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당시 심리전단 업무를 맡은 국정원 간부에게 국정원 내부의 종북 개념을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2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법정에 출석한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단장에게 "안보활동을 빙자해 선거개입을 하지 못하게 법 개정이 이뤄졌는데도, (종북세력을 정하는)기준과 범위 없이 부서의 판단에 따라 활동하는건 정치개입이고 선거관여"라며 "국정원 내부에 종북 개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민 전 단장은 "다른 곳에서는 정한게 있는지 몰라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재판부는 "증인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보인다"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이에 윤 지청장은 "막연하게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거나, 정부의 주요 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이 종북인 거냐, 종북 척결이 그런 기준이라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윤 지청장은 아울러 "이번 사건은 공소시효가 남아서 기소했지만, 예전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돼 왔었다. 종북척결이 목표라면 판단 기준을 얼마나 명확하게 해 공격대상으로 삼았는지 보여줘야 할 것"이라며 "다른 증인들에 대해서도 질문할 핵심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국정원 직원이 심리전단팀 사이버 활동을 하면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일반 국민인 것처럼 댓글을 달거나 글을 올리는 행위를 한 부분에 대해서도 공방이 오갔다.
검찰은 "(사이버 활동의 목적이)대남선전을 하는 북한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것이라면 왜 그 출처를 알리지 않았나. 출처는 빼고 게시글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결론만 알리면 특정 정당의 손을 들어주는 것인지, 대남선전에 대한 대응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민 전 단장은 "업무 특성상 출처를 밝히는 활동을 안한다. 부서의 틀 안에서 활동해 왔다"고 답변했으며, 변호인은 "대남선전 사이트에 게시글이 올라오면 실시간으로 종북좌파 세력이 도배를 한다. 일반 국민은 그걸 모르니 출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민 전 단장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북한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개인·단체에 대해 심리전을 편 것은 북한 대남선전에 대응하는 사이버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일축했다.
그는 검찰이 "문제가 된 '국정원 댓글'의 큰 목적이 북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더라도,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야권을 비판하고 야당의 후보가 당선되는걸 반대하는 걸로 보인다"고 지적하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과 관련해 지시를 받거나, 직원들에게 지시한 적 없다. 공작할 때 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한 적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같은 취지의 답변이 계속되자 검찰은 "증인이 피고인 앞에서 진술하는 게 부담감이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재판부는 "행간의 취지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민 전 단장은 "부서장 회의와 모닝 브리핑회의에서 나온 원 전 원장의 지시 내용을 이슈로 사이버 활동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업무에 일부 반영된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심리전단팀이 사이버 활동을 한 대표적인 이슈에 대해 "북한 사이트를 모니터링 하기도 하고,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사안을 보기도 한다"면서 "제주 해군기지나 대통령 외교성과, 민조총·전교조 대응, 무상복지 대응 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현안 모니터링 외에도 원 전 원장이 늘 강조한 틀 안에서 업무 범위가 정해지는 건가"라고 묻자, 민 전 단장은 "원장의 말이 업무에 반영되는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서장 회의에서 나온 원 전 원장의 말이 모두 직원의 업무에 연결될 수는 없다. 직원들의 소양이 각기 다르고, 업무와 관련된 것만 적용한다"고 선을 그었다.
법정에서는 지난해 총선 직전 원 전 원장이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가지고 어떻게 해든지간에 다시 정권을 잡으려하고…우리 국정원은 금년에 잘못 싸우면 없어지는거야. 여러분들 알잖아"라고 말한 지시사항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이 "다시 정권을 잡으려는 종북 좌파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표현 자체가 정권을 잡았다는 건데 야당 내지 야권으로 읽힌다"고 말하자, 그는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지령을 내리는 상황이 있는데 실상을 직원들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는 증인석과 방청석 사이에 병풍 형식으로 된 약 150㎝ 높이의 차단막이 설치 된 채 민 전 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원 전 원장측 변호인은 재판 시작에 앞서 비공재 재판을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비공개 사항이 아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