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얼마 전 제주도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가해 풀을 베던 78세 어르신이 작업 도중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 숫자는 처음으로 600만명을 넘어섰으나 이처럼 빈곤과 질병으로 시달리는 어르신들이 많다.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는 꽃할배들이 있는가 하면 힘겨운 노후를 보내는 어르신도 적지 않다. 고령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뉴스토마토 은퇴전략연구소가 노후빈곤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정모(70세)씨는 노후생활이 행복한 편이다. 정씨는 중학교 교사직에서 은퇴한 이후 노후생활에 대해 1년가량 '여유 있게' 고민했다. 연금이라는 버팀목 덕분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 그는 현재 어린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양로원에선 동년배들에게 한글·영어 등을 강의한다. 서울시 소재 도서관,
KT(030200) IT서포터즈 등에서 관련 강의 기술을 배워 이룬 결과다.
#김모(65세)씨는 3년 전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비는 매달 70만원이 들어간다. 이 돈은 아내 강모(61세)씨가 아파트 계단을 쓸고 닦아 버는 80만원으로 겨우 충당하고 있다. 외환 위기 직후 직장에서 쫓겨난 김씨는 그동안 고된 노동을 했다. 할 줄 아는 일은 직장에서 하던 것뿐이었고, 모아 둔 돈도 넉넉지 않아 사업을 할 수도 없었다. 월남전 참전 후유증도 겹치면서 병원 신세다. 소득이 불안정한 탓에 아들 김씨(33세)의 대학 졸업과 취직도 늦어졌다. 최근 아들이 취직에 성공했지만, 앞으로 병원에서 보낼 날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노령층 빈부 격차 세계 최고 불명예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의 빈부 격차는 심각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올해 초 발간한 '소득불평등 실태'를 보면 노령층의 지난 2011년 기준 지니계수는 0.50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0.299로 우리나라는 세계 꼴찌수준이다.
지니계수는 값이 클수록 소득 불평등도가 크다는 뜻이다. 0.400을 넘으면 빈부격차가 사회문제로 인식되는데, 우리나라 노령층의 경우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반정호 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노동시장에서 은퇴한 우리나라 노령층의 소득불평등은 근로연령층에 비해 크게 높다"며 "은퇴 이후 소득은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사회보장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일부는 계속해서 저임금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빈부격차가 심하다보니 은퇴준비는 언감생심이다.
KB 경영연구소가 지난 20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비은퇴 가구의 노후 재무준비지수는 40.3에 불과했다.
재무준비지수가 40.3이라는 것은 현재와 같은 노후준비 활동을 은퇴 시점까지 지속할 경우, 가구가 예상하는 월평균 노후생활비(227만원)의 40.3%(91만원)만이 준비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신문을 읽는 등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김동훈 기자)
◇고령자 의료빈민 급증
의료 부문에서도 노인들의 격차는 눈에 띈다.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최고급형 실버타운 '더클래식500'에 입주하려면 부부 중 한 명이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보증금 8억8000만원과 매달 112만∼20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각종 고급 부대 시설 외에도 의사·간호사·운동처방사·물리치료사·영양사 등으로 구성된 건강 관리팀이 개인별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실버타운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어르신들로부터 인기다. 더클래식500 관계자는 "지금 예약하면 내년 초쯤 입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도 못내는 어르신들도 많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양승조 의원에 따르면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노인은 지난해 기준 전체의 11.4%나 된다.
노후의 3고(苦)인 질병과 가난, 고독에 노출된 어르신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고독한 어르신들은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에 올라있다.
김희규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노후 준비의 양극화로 심화되지 않도록 금융교육과 제도적 보완장치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