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창조경제'와 '새마을운동'

입력 : 2013-10-21 오전 11:29:06
하다하다 이제 새마을운동이란다.
 
시쳇말로 ‘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국정원과 검경을 동원한 공안정국 조성에 이어 유신의 잔재인 새마을운동까지, 시계는 2013년을 가리키고 있지만 정치의 물줄기는 1970년대를 향해 역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키 위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새마을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라며 제2의 새마을운동을 제안했다.
 
안전행정부는 즉각 대통령의 뜻을 받들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 범국민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하는 한편 지구촌 전파에도 노력키로 했다. 이를 위해 국가 예산도 투입된다.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 행복에 기여하는 글로벌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언급이 주효했다.
 
그만큼 새마을운동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긍지는 대단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희망을 일으켰던 새마을운동이 지금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새마을운동 이면에 있던 역사적 그늘은 애써 외면했다.
 
새마을운동은 전체주의를 대표하는 70년대 개발운동이다.
 
농촌재건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정부의 주도 끝에 우리사회 전체를 규정짓는 근대화 운동으로 확대, 발전됐다. 특히 1969년 3선 개헌, 1971년 대선 및 비상사태 선포, 1972년 유신체제 선언 등 군사정권의 장기독재 과정과 일련의 흐름을 같이 했다.
 
학자들은 새마을운동이 물질적 성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운동으로 비화됐으며, 이는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돌파하는 주요 수단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신체제를 떠받든 농민과 서민들 지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농야도(與農野都)의 근원이자, 관권 선거를 낳은 국가주의 산물이기도 했다.
 
특히 전국 3만3267곳의 리·동이 집권당인 공화당 조직 기반으로 활용되면서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 중 하나인 ‘자조’는 ‘타율’로 변질됐다. 정부가 내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수단이 됐고, 이 과정에서 국민적 자율은 철저히 배제됐다.
 
71년부터 84년까지 총 7조2000억원이 투입됐으며, 이중 정부 투자가 57%였다. 이후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지도자대회 등 겉치레 연중행사로 전락했고, 특히 5공 시절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1000만명의 조직원과 500억원에 달하는 자산, 각종 성금과 기금 등을 유용하는 부패의 온상이 됐다.
 
전 국민을 산업화 역군으로 만들겠다는 이 같은 전체주의적 사고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창조경제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획일화된 산업구조를 탈피, 다양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시장을 활력 있게 만들고 국가경제의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창조경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다. 새마을운동의 부활은 역사의식 부재와도 직결된다.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로 되살아나고, 친일파가 애국지사로 둔갑해 국사 교과서에 버젓이 수록되는 터에, 유신 잔재마저 그 딸에 의해 미화된다면 일본의 침략주의 행태에 어떤 논리로 맞설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인혁당 발언으로 수세에 몰린 끝에 참회의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이것을 박 대통령 진심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산업화의 ‘공’(功) 뒤에 자리한 인권유린 등 독재의 ‘과’(過)를 벗지 못한다면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응할 명분을 잃게 된다. 그가 아무리 국제무대에서 노골적으로 아베 총리를 싸늘히 외면한다 해도 과거 지향이라는 본질은 같게 된다.
 
나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는 우렁찬 나팔로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
 
그저 박 대통령이 ‘박정희의 딸’이 아닌 국민통합을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자리하길 바랄 뿐이다. 그의 말처럼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지난해 9월24일 대선을 앞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당시 후보)이 약속한 말을 떠올려 본다.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김기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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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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