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진흙탕 정치판에 준예산 편성 초읽기

법정시한은 이미 물리적 한계점..회계연도 넘길 가능성 커져
준예산 편성해도 편성 범위 놓고 해석 분분할 듯

입력 : 2013-11-07 오후 5:08:52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얼마전까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awn·잠정폐쇄)'을 우려했던 한국 정부가 그와 유사한 준(準)예산 편성을 걱정하게 됐다.
 
(사진=국회)
국회의 결산과 예산안 심의가 집중돼 있는 연말에 정치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서해북방한계선(NLL) 논쟁에서 파생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제에서부터 국가기관들의 대선개입, 그리고 최근에는 통합진보당의 해체문제까지 엮여서 정치상황이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이 민생을 앞세우며 예산안의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정치생명까지 걸어야 할 정도로 쉽게 물어설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대화록 문제부터 보더라도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까지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들이 전방위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국정감사 과정에서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지예산과 맞물려 있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국정원 수사와 엮여 있는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까지 더해져 연말 국회는 예산안 심사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에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이미 불가능한 상황에 왔고, 12월31일을 넘겨 회계연도를 지키지 못할 확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회의 예산안 의결을 회계연도 개시(1월1일) 30일 전까지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은 오는 12월2일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 일정을 보면 8월말에 완료했어야 하는 결산 처리도 오는 15일 본회의에서 하는 것으로 잡혀 있다.
 
4일부터 진행된 결산심사를 10여일만에 졸속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결산이 본회의에서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18일부터 예산안 심사에 착수해서 2주 뒤인 12월2일 법정시한까지 처리해야 한다.
 
올해 결산과 내년 예산은 불과 4주만에 뚝딱 처리돼야만 헌법을 지키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미 예산안의 법정시한내 처리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정된 국회 일정은 그야말로 예정일 뿐 지켜질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특히 올해는 정치적인 문제가 복잡해서 올해안에만 처리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회가 예산안을 법정시한내에 처리하지 못한 적은 부지기수였고, 2003년 이후에는 단 한번도 법정시한 내에 처리한 적이 없었으며, 올해 예산안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회계연도까지 넘겨 새해 첫날에 겨우 처리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 정국보다 더욱 더 많은 매가톤급 정치사안이 집중돼 있는 올해 연말에도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12월31일로 회계연도가 끝난 후에도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는 준예산이 집행된다.
 
준예산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사실상 거의 모든 정부기관들의 시설의 유지와 운영, 이미 예산으로 승인됐던 계속사업 등을 전년도 예산안에 준해서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미국의 경우처럼 재정집행이 아예 중단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신규사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복지예산 지원 등은 중단될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지난해는 1월1일 새벽에 처리됐기 때문에 회계연도를 넘기긴 했지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실질적인 준예산이 편성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처음 있는 미지의 세계"라면서 "당장 헌법에서 명시한 편성가능한 예산의 범위를 놓고 법리해석에 대한 논쟁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54조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계속사업에 한해서만 전년도 예산에 준해서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준예산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해석도 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셧다운이 됐을때도 큰 문제가 없었던 만큼 준예산이 편성된다고 해서 당장 국가재정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통상적으로 법정시한을 넘겨왔고, 12월말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예산안 처리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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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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