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황민규기자] 동양 사태를 계기로 유동성 위기론이 부각된 일부 대기업들이 자산 매각 등 위기 타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경제개혁연구소가 현대와 한진, 두산, 동부 등 4개 그룹의 부실 여부를 주목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계에서는 다소 의외의 주장이 제기됐다. 재계 1위인 삼성도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부진할 경우 동양과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삼성전자(005930)가 분기 기준 영업이익 10조원의 위업을 세운 현 시점에서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주장의 주인공은 국내 대기업 지배구조 연구 분야에서 손꼽히는 석학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진=뉴스토마토)
박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뉴욕주립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지난 2003년부터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온 직후에는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재벌 지배구조에 관한 다양한 이론·실증적 연구를 선보이며 정·재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지주회사체제 전환 시뮬레이션인 '순환출자구조를 가진 재벌의 지주회사체제 전환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논란의 정점에 서기도 했다.
박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동양그룹의 지배구조가 사실상 삼성그룹을 본따 설계된 형태라고 설명하며 삼성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주)동양과 동양시멘트가 일종의 삼성전자 역할을 한다. 동양증권이 삼성생명, 동양레저가 에버랜드 역할을 하는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순환출자 구조일 경우 특정사업 부문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을 이용해서 부실을 덮는 소위 '사금고 역할'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또 금융기관을 통해서 부실이 어떻게 대기업 전체로 전파되는지 동양 사태를 통해 확연히 나타났다"고 강조하며 지배구조상 삼성그룹이 떠안고 있는 취약점을 지적했다.
박 교수가 특히 목소리를 높여 경고하는 부분은 동양 사태와 삼성의 어려움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타격의 차이를 비교할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삼성이 전자 부문의 승승장구로 일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희 회장 지적처럼 이 또한 언제까지 지속되리라 장담할 수 없다.
박 교수는 휴대폰의 제왕이었던 노키아의 몰락을 예로 들며 최근 IT 산업의 변동성이 매우 커졌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고,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축으로 순환출자로 얽혀 있는 현실이 결과적으로는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다는 논지를 펼쳤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대학교에 위치한 박상인 교수의 연구실에서 1시간여 넘게 진행됐다. 다음은 박 교수와 일문일답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진=뉴스토마토)
-동양그룹 사태 이후 비슷한 재무 상태의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 그런데 박 교수는 표면적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삼성그룹에도 비슷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닌데 실제 동양그룹은 삼성을 상당히 모방한 형태의 지배구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순환출자구조를 보면 (주)동양과 동양시멘트가 사실상 삼성전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양증권이 삼성생명, 동양레저가 삼성에버랜드 역할을 맡는다. (삼성에버랜드와 마찬가지로) 동양레저의 총수일가 지분도 50% 정도다. 또 계열사가 순환출자로 (나머지) 지분을 밀어주면서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동양레저가 (주)동양의 최대주주로 지배하고 있고, 동양레저가 또 동양증권 지분을 가지고 있고, (주)동양으로 간 지분이 다시 동양인터내셔널을 통해 동양증권으로 간다. 이 세 가지가 핵심이다.
현재 지난 2000년부터 과거 10년간 동양그룹 순환출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고 있다. 삼성이 에버랜드를 통해서 재산을 다 물려준 것처럼 동양도 동양레저를 통해 승계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실제 동양시멘트가 위치한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양이 삼성을 모방해서 의도적으로 구조를 만든 것이 맞다고 한다. 동양사태를 보면 삼성그룹이 얼마나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동양 사태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대해 암시하는 점이 있다면.
▲동양그룹을 보면 우선 동양레저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동양시멘트가 상대적으로 양호했으나 건설경기 악화로 인해 전반적 사업 부문이 부진을 겪었다. 골프장 사업이 잘 될 것 같아서 새롭게 건설에 나섰지만 잘 풀리지 않으면서 동양레저 역시 부실화를 면치 못했다. 이를 돕기 위해 동양증권을 통해 회사채 팔려고 했던 것이다. 동양증권의 100% 자회사가 동양파이낸셜이라는 대부업체다. 이 회사를 통해 계열사들 돈까지 빌려줘서 밀어줬다. 이처럼 순환출자구조로 (기업들이) 엮였을 때는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금융을 이용해서 부실을 덮으려고 하는 사금고식 운영을 나타내고 있다. 동양사태를 보면 금융기관을 통해서 부실이 어떻게 전파됐는지, 또 동반부실이 어떻게 됐는지 잘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관계를 보자. 지금 삼성전자 이익의 70%가 휴대폰에서 발생한다. 갑자기 노키아처럼 문제가 생겼을 경우 삼성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삼성생명은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를 통해 투자를 하고 있는데 전체 금액의 76%를 삼성전자에 소위 ‘몰빵’하고 있다. 삼성전자 상황이 나빠지는 건 결국 삼성생명의 자산 가치가 없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 때 캐피탈 로스가 심하게 타격을 받자 AIG가 크게 휘청한 상황이 동일하게 연출될 수 있다. 만약 그런 경우가 된다면 삼성이 막으려고 하다가 못 막을 때 터지면 내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부실이 전이돼 있을 것이다. 삼성의 모든 걸 동원해서 부실을 막으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동반 부실로 이어진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흔들리면 우리나라 산업과 금융이 다 날아간다. 삼성생명 보험 안 든 사람이 어디 있나. 피해 규모가 동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악몽같은 시나리오다. 삼성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사진=뉴스토마토)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질주하기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인데,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가.
▲프랑스의 앵세아드(Insead)라는 파리 근교의 명문 비즈니스 스쿨이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비즈니스 스쿨인데, 이곳 교수가 최근 한 포럼 때문에 방한해 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분은 본래 경영 전략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최근에는 공공정책(Public Policy)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계기를 물어보니 노키아 때문이라고 하더라. 노키아가 본격적으로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한 건 2007년인데 그보다 앞서 2003년경에 우연히 노키아의 고위 임원이 자기한테 “노키아가 망할 것 같아 걱정이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노키아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교수가 이유를 물어보니 임원은 뚜렷한 이유는 없으나 그저 불안하다고 했다. 당시에는 막연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가 나와서 밀려나면 어떻게 하나’에 대한 근거 없는 걱정이었다. 이는 대기업이 새로운 기술 혁신이 어렵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이다. 대기업은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모두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 가진 것을 기반으로 좀 더 잘해보자는 생각이 많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비슷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삼성전자가 10년 후 어떻게 될 지 공포를 느낀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삼성전자가 잘 나간다고 해도 노키아와 꼭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역사를 보면 오히려 (노키아처럼)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안심할 수 없다는 거다.
순환출자와 금산분리는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인데, 동양의 경우 규모가 작으니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쳐도 삼성이 터진다고 생각해 봐라.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당시는 국가채무, 외환보유고 문제 때문에 (외국 기업들의) 공격이 있었지만, 국내 기업들의 생산 기반이나 경쟁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이 무너지면 더 심각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순환출자, 금산분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삼성에 불행한 사태가 오더라도 국가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최소화되고, 적어도 산업 충격이 금융에 안 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창조경제가 된다.
(정부는) 말로만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다. 실제로는 '굴뚝경제' 시절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창조경제가 핵심이 되려면 잠재적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혁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 져야 한다. 기존 기업들이 망하는 걸 흡수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다이나믹스(dynamics)가 우리나라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재벌이라는 큰 집단에 모든 것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동양 사태도 동양레저 등의 개별 기업만 망하는 수준에서 끝났을 것이고, 증권 부문까지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충격은 일부에서 흡수하지만 큰 충격이 오면 다 무너지는 셈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경제 위기가 한 번 지나가면 사회계급화,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 위기를 극복하고 돈 관리를 잘 해서 잘 버는 건 상대적으로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여당이나 전경련 등 재계에서는 한목소리로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해 투자 감소, 해외 기업의 적대적 M&A 등에 노출된다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입법 다루는 정무위 소위에서 순환출자 금지 관련해서 전문가들 불러서 의견을 발표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와서 참석한 적이 있다. 전경련은 외국 기업에 적대적 M&A에 노출되고, 투자가 감소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순환출자를 아예 전면 금지시킨다고 해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지배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적대적 M&A가 일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위기가 있었던 사건이 소위 ‘소버린 사태’인데 당시 SK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이 약했음에도 위기를 넘겼다. 그 이후 최 회장이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LG도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지주회사로 가지 않는 것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경제력 집중 규제, 출자단계 규제, 지분율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 지주회사 제도로 가면 금산분리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 적대적 M&A 등 위험이 있는 경우, 혹은 기업을 분할해야 하는데 주식 거래 시 양도소득세나 법인세 내야 하는 경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사례는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주식 맞교환에 따른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기업 지배구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세제 혜택이 있는 것이다. 상당한 혜택임에도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는 쪽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전경련에서 시장경제 어쩌고 하면서 적대적 M&A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재벌 무너지면 비즈니스 사이클에 흡수되지 않고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그때는 적대적 M&A가 가능하고 헐값에 매각이 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전경련은 IMF 시대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적대적 M&A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적대적 M&A가 위기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시장에서 일종의 규율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데서는 좋게 쓰이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출자구조에 대한 근본 변화 없이 안 된다. 순환출자나 금산분리가 안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외에도 기업 경영 의사 결정이 바람직하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측면에서 봐도 문제다. 과격하게 뭘 하자는 것이 아니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가) 지주회사조차 반대했었지만 지금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줬음에도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