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법원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후 항소한 피고인에게 항소기각의 내용이 담긴 판결문 초고를 보인 뒤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시켰다.
감형돼 석방되거나 항소가 기각돼 구속 상태에 머무를 처지에 놓인 피고인을 두고 선고에 앞서 법원의 판단을 비춘 데 대해 법원 측은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13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형사항소부 A재판장은 지난 1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B씨의 판결 선고에 앞서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말했다.
이어 A재판장은 주심 판사와 몇 마디 나눈 뒤 "피고인의 형을 어떻게 정할지 고심된다"며 준비해 온 판결문 초고 중 하나를 골라 판결 이유를 설명하고 B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B씨는 술에 취해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을 하고, 폭행한 혐의로 지난 7월 구속기소됐다. 그는 동종 전과가 있는 점이 양형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항소한 상태였다.
이에 법원 관계자는 A재판장이 피고인을 세워두고 "판결문을 두 개 써왔다"고 한 발언에 대해 "문제가 돼 보인다면 할 말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재판부가 동종전과가 있는 피고인에게 어떤 선고를 내릴지 고민이 많았다"며 "선처를 하되 반복하면 선처는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고에 앞서 판결문 초고를 두 건 작성한 데 대해서는 "단지 첫 재판에서 판결을 선고하는 즉일선고를 앞두고 판결 원본이 아닌 초고를 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해당 재판부가 가져간 초고에는 서명과 날인이 안돼 있었다"며 "초고는 초고이며, 열 건을 써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법원조직법이 정한 합의의 비공개 원칙을 어겼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주심 판사와 사건을 논의한 것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A재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에 참배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었다.
또 서울 도심에서 편도 4차로를 점거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서울법원종합청사(사진=뉴스토마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