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장기침체를 탈출한 유로존 경기가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회복설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1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종료한 유로존이 그간의 여세를 몰아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너진 것이다.
게다가 유로존 회복 둔화는 역내 부채국과 세계 무역 파트너들의 수출액을 낮추는 원인이 될 수 있어 세계 경제 성장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 때문에 최근 금리 인하를 단행했던 유럽중앙은행(ECB)에 추가 경기부양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유로존 3분기 GDP 성장률 0.1%..회복세 맞나?
1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통계청은 유로존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분기 연속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나, 지난 2분기의 0.3%에 비해서는 소폭 꺾인 것이다.
◇유로존 GDP 추이 (자료=CNNMoney)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로존 회복세가 금융위기 발발 전인 5년 전보다 턱없이 부족하고 저조한 생산성과 고용현황을 개선할 만한 수준도 아니라고 평가했다.
국가별로는 프랑스가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0.1%로 전문가 예상치인 0.1%에 미치지 못했고 독일은 예상치인 0.3%에는 부합했으나 지난 분기 0.7% 보다는 둔화됐다.
이탈리아는 -0.1%를 기록하며 전분기의 -0.3%에서 호전됐지만, 여전히 경기침체를 매듭짓지 못했다. 부진한 산업생산과 정국불안 탓에 성장세가 미약했던 것. 그리스도 -0.1%를 기록했다. 그나마 관광수입이 증가하면서 전분기 보다 성장률 하락 폭을 줄였다.
니콜라스 스피로 스피로소버린스트래티지 대표는 "3분기 GDP 지표는 유로존 회복세가 얼마나 빈약하고 힘이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며 "심지어 유로존의 상태를 회복 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포르투갈은 부채 감축을 위한 긴축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전분기 대비 0.2% 성장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실업률도 하락하는 추세다. 오스트리아는 0.2%, 벨기에와 네덜란드도 각각 0.3%, 0.1% 호전됐다.
◇성장둔화는 '주요국 부진 · 소비심리·고용 '위축' · 유로화 강세' 탓
유로존 경기 둔화의 원인은 긴축으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를 비롯해 고용문제, 정치권 불안, 미국 양적완화로 인한 유로화 강세 등 셀 수 없다.
우선, 독일 정부가 주도하는 긴축정책으로 각국 소비심리가 위축된 점을 문제로 들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7%에 그쳐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진한 물가 상승률이 발표된 이후, 유럽중앙은행(ECB) 경제학자들은 오는 2015년 CPI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의 1.8%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치인 2% 선에서 더욱 멀어진 셈이다.
소비심리 악화로 인플레가 4년래 최저치를 기록한데다 전망까지 후퇴하자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읽어버린 10년"은 장기 경기침체를 비유한 말로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부채위기를 설명할 때와 1990년대의 일본 경기침체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
WSJ은 이번 3분기 GDP로 유로존이 장기침체(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조너선 로인스 캐피탈 이코노믹스 선임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에 근접한 성장률은 유로존 회복세가 미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며 "디플레이션 위기감이 한층 고조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양대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제 몫을 못해 주는 면도 있다.
특히, 역내 경제 2위국 프랑스는 기업 경쟁력 약화와 투자 유치 실패로 좀처럼 경기 상승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프랑스 전력·운송업체 알스톰, 국내 유일의 피아노 브랜드 아틀리에 플레옐은 인원감축을 단행할 예정이다.
마크 투아티 AC데피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는 외부 투자가 줄어들고 실업문제가 악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의 맏형인 독일은 체면치레만 했다. 독일은 주변국들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좋았던 수출이 감소하면서 성장률이 하락할 위기에 처했으나, 내수가 소폭 증가하면서 겨우 시장 예상치에 도달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3분기 성장 요인은 내수이며 수출 부진은 유로존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로화 강세 또한 역내 수출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이미 올들어 2%가량 오른 상태.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인 자넷 옐런이 강한 경기부양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유로화 강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유로존 경기 둔화..세계 경제 성장에 걸림돌
전문가들은 유로존 문제가 통화 동맹을 넘어 세계 경제 성장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경제전문 매체 CNBC는 유로존 경기둔화가 세계 경제 회복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실망스러운 유로존 성장률이 나온 이후 올 하반기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 중 하나인 유로존의 경기악화는 곧 무역 파트너인 미국, 중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의 수출고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수출 주도형 국가들은 유로존에서 상당 규모의 수출고를 올리고 있다.
ECB의 조사에 따르면 2008~2012년사이 유로존 총수입의 43% 가량은 비유럽연합(EU)과의 거래에서 비롯됐다. 이중 미국은 8.5%, 중국은 12%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10%를 담당했다.
더불어 유로존 경제 악화는 중앙 유럽 국가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의견도 있다.
니콜라스 스피로 스피로소버린스트래터지 대표는 "흔들리는 유로존 경제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불안요인으로 평가됐다"며 "특히 역내 수출에 의존하는 중앙 유럽 경제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경제 둔화로 세계 경제 성장세마저 위협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ECB에 경기 부양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다.
ING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기침체 우려감이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며 "ECB는 추가 부양책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유로존 경제가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강력한 성장세는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프레데릭 듀크로젯 크레디아그리콜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느린 경기 회복세를 경험 중"이라며 "실업률은 점차 떨어지겠지만 내년에도 놀랄 정도의 성장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IHS는 올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진 않겠지만, 미약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