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일자리)①취지는 좋은데..'나쁜 일자리' 전락 우려

전 국민의 정규직 알바화?..세대갈등 등 곳곳에 지뢰밭

입력 : 2013-11-20 오후 1:24:12
국민행복시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목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고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문제는 방식. 시간제 일자리가 수단으로 제시됐다. 취지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어떻게 자리 잡느냐에 따라 훌륭한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질'이 담보되지 않은 시간제만이 양산될 경우 국민행복은커녕 국민불행만 가져올 수 있다.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의 조짐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기업들도 정부 눈치 속에 억지춘향식 채용계획을 내놨다. '양'이 강조되면서 '질'은 실종됐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제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무리하게 수치 올리기에만 집중한 결과다. 시간제일자리를 집중 해부해 본다. [편집자] 
 
[뉴스토마토 최승환·임애신기자]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 아니냐 등 비판적 시각이 주를 이룬다.
 
시간제는 전일제 근로자에 비해 업무량이 절반 수준이다. 때문에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지만 사실상 승진은 어렵다. 장래성이 보장되지 않으면서 정부가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론도 있다. 육아 등으로 사실상 일자리에서 멀어진 주부와 퇴직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회 진입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구직자들에게 시간제가 '선악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 취지에 걸맞은 근로문화가 절실해 보인다.
 
◇기혼여성·퇴직자 '환영'..적정임금·고용안정 필수
 
능력이 있음에도 육아와 가사 때문에 직장을 포기한 여성들은 시간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2년 전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조모(35세)씨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종일보다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더 필요하다"며 "안정성만 보장된다면 괜찮은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8년 간 일하던 직장을 그만 둔 오모(39세)씨는 "본인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노모에게 갓난아이를 맡기고 일하러 나갈 수 없었다"면서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는 거라면 아이를 주변에 맡기는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의도치 않게 직장을 그만 둔 중·장년층이나 정년 퇴직한 사람들도 기대감을 나타내기는 마찬가지.
 
정년 퇴직한 윤모(65세)씨는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다 정년 퇴직한 후 비슷한 일을 찾고 싶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직이 불가능했다"면서 "집에서 짐짝 취급을 받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오피스텔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퇴직한 정모(60세)씨는 "퇴직한 후 쓸모 없는 존재가 됐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면서 "좋은 조건에서 일정 시간 일할 수 있다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건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구직자들이 시간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적정 임금 보장과 고용 안정성으로 조사됐다.
 
최근 취업전문포털 파인드잡이 25세 이상 남녀 구직자 17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간제 근무를 할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할 기준으로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가'를 꼽았다. 다음으로 '돈을 얼마나 많이 주는가'로 나타났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의견은 찬반 양론으로 팽팽히 맞섰다. '차별이 없다면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37.8%, '현실적으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37.7%로 집계됐다. '아르바이트만 더 양산하게 될 것 같다'는 응답도 14%를 차지했다.
 
시간제가 파트타임 일자리와 다른 점은 고용 보장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와 달리 공공부문의 시간제 일자리는 정년 보장과 함께 공무원 연금 가입도 가능하다. 차별성을 최소화했다는 설명.
 
정부는 시간제가 아르바이트나 단순 노무가 아닌, 개개인의 경력을 계승해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고 복리후생 등에서 전일제 근로자와 차별이 없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시간제 일자리,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
 
정부가 이처럼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가운데 정작시간제가 내실 있는 일자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시간제의 장점이자 맹점은 전일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명이 나누는 데 있다. 전일제 근로자 한 명이 하루에 8시간 일하는 것을 두 명이 나눠서 4시간씩 일하게 된다.
 
일하는 시간이 절반이면 임금도 절반으로 낮추는 게 당연하다. 구직자들이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장래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일반적으로 시간제 근로자에게는 승진 기회와 호봉 상승 등이 사실상 닫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시간제 근로자에 대해서는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규모가 얼마나 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약속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노동계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정규직 아르바이트'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국장은 "정부가 현 재정상태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 70%를 달성할 수 없어 대책으로 들고 나온 게 시간제"라며 "채워야 할 목표를 시간제로 채우겠다는 것인데, 이는 전일제에 비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간제가 경력 단절 여성에게 자아 실현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일제로 일하던 근로자가 육아 등을 이유로 시간제로 바꿨을 때 다시 전일제로의 전환이 수월하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전기전자 업계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35세)씨는 "유리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제는 여성들에게 독이 될 것"이라며 "'시간제=여성일자리'라는 고정관념이 생길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전일제와 시간제 간의 자유로운 이동과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은기 민주노총 사회공공성본부 국장은 "시간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일제와 시간제의 자유로운 소통이 중요하다"며 "전일제가 시간제를 원할 경우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시간제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전일제로 채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좁은 취업문..청년층 '일자리 박탈감'은?
 
시간제가 증가한다는 것은 곧 전일제 근로를 원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쳥년층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바늘구멍인 청년층의 취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채용 계획을 밝힌 공무원·교사 등의 시간제 일자리는 청년들의 선호가 높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평균 46.9대 1에 달한다. 삼성과 현대차, SK 등 대기업들도 평균 수 백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한다. 사실상 '고시'다.
 
◇ 잡 페스티벌에 몰린 인파 ⓒNews1
 
전일제 일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추가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면 좋겠지만 연 2~3%의 저성장에 들어선 상황에서 절대적인 일자리가 느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시간제를 늘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자리를 쪼갤 수밖에 없게 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올해 10월 기준 실업률은 2.8%다. 통계대로라면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깝다. 이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도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7.8%로 평균을 크게 웃돈다. 56.6%에 불과한 청년층 고용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실업률은 훨씬 높다는 평가다.
 
시간제 일자리가 청년층과 여성·중장년층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정된 일자리를 쪼개 여성과 중장년층에게 나눠주게 되면, 안정성과 함께 적정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청년층과 남성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한기 경실련 국장은 "선진국은 청년층과 여성들이 선택적으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시간제가 가능했다"면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고용의 질을 나쁘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과 퇴직자, 그리고 청년들을 현 정권의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말로만 양질의 일자리를 외칠 것이 아니라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문제의식의 부재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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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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