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ed)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금 고조됐다.
연준 위원들이 향후 몇 개월 안에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선언될 수 있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 일부 위원들은 고용 시장 개선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양적완화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최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자넷 옐런 부의장이 양적완화를 지지하는 발언을 남긴 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으로 경제 지표 결과에 따라 연내에도 테이퍼링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준 "수 개월 내 양적완화 축소할 수 있다"
20일(현지시간) 연준은 지난달 29~3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의사록을 공개했다.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찬성 9명, 반대 1명으로 매월 850억달러의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권(MBS)을 매입하는 종전의 통화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과 부합된 결과지만 의사록의 세부 내용들을 살펴보면 통화 정책에 대한 연준 내부의 기류가 전과는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사록은 "연준 위원들이 경제 상황만 받쳐준다면 앞으로 열릴 몇 차례의 FOMC 회의에서 자산매입 속도를 늦추는 방안이 채탤될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연준 관계자들이 지난 5월부터 양적완화가 언젠가는 중단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인정하기는 했지만 가까운 미래를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일부 위원들은 "노동 시장의 개선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양적완화는 축소되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샘 코핀 UBS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테이퍼링에 보다 가까워졌다"며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등 연준이 제시한 지표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연준은 섣부른 테이퍼링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대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업률이 목표치인 6.5% 이하로 내려오더라도 일정 기간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것과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한 금리를 지금의 0.25%보다 낮추는 방안 등으로 지속적인 경기 부양을 꾀하겠다는 의도다.
또 연준은 어떠한 방법으로 테이퍼링에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국채와 MBS 매입이 같은 규모로 줄어들 것이란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모기지 시장 부양을 위해 국채 매입을 우선 중단해야 한다는 시각과 신용 조정의 가능성으로 MBS 매입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출구 못찾는 경제지표..경기회복 신호에 '촉각'
연준이 테이퍼링의 조건으로 경제 상황의 개선을 꼽은 만큼 미국의 주요 경제 지표는 시장의 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있다.
우선 고용 시장이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달의 신규 취업자 수는 20만4000명 증가했다. 12만명 증가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
실업률은 7.3%로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 최고치인 8.1%에서 크게 떨어졌다.
◇미국 고용 동향 추이(자료=미국 노동부)
이에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지난 19일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한 연설에서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의 고용시장은 의미있는 개선을 보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고용 상황이 테이퍼링을 유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란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날 공개된 의사록에서도 회의 참석자 들이 "미국의 경제 활동이 예상보다 취약한 편"이라며 "고용 상황 역시 더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도 이날 가진 연설을 통해 "지금보다 빠른 경제성장률을 위해서는 노동 환경이 나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달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달보다 0.1% 밀리며 6개월만에 하락 곡선을 그린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연준의 목표치인 2%에 못 미치는 것은 물론 디플레이션의 위험까지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날 미국 상무부는 10월의 소매판매가 전달보다 0.4% 증가했다고 밝혔다. 0.1% 증가할 것으로 점친 사전 전망치를 웃돌며 성장 둔화 우려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지난달의 절반 넘게 이어진 연방정부의 업무 중단(셧다운) 영향도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인 브라운 로드아베크 투자전략가는 "연방정부의 셧다운에도 소비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며 "연준은 경제 회복의 신호를 보내는 지표들을 더 보고싶어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안 쉐퍼드슨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지 않는 한 연준은 테이퍼링에 나설 것"이라며 "11월의 고용지표가 양호하게 나타난다면 옐런 역시 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이퍼링, 도대체 언제?.."12월 혹은 1월"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도대체 언제 테이퍼링이 선언되는가이다.
앞선 두 차례의 양적완화와 달리 이번에는 끝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테이퍼링 시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 혹은 종료로 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수요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일부 연준 위원들은 양적완화의 총 규모와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자고도 주장했지만 자산 매입을 경제 지표와 연동시킨다는 당초의 취지와 어긋나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연준은 매월 850억달러의 자산을 사들이고 있으며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이날의 의사록 내용으로 미뤄봤을 때 연준의 테이퍼링이 내년 3월보다 더 빨리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12월이나 1월에 자산매입이 축소될 확률이 커진것이다.
앨런 러스킨 도이치뱅크 투자전략가는 "연준 위원들은 지표만 양호하다면 테이퍼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있다"며 "12월의 회의에서 테이퍼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톰 드마르코 피델리티캐피탈마켓 투자전략가도 "12월 중 테이퍼링이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면서도 "여러가지 정황들을 고려했을 때 내년 1월이 보다 유력하다"고 분석했다.
연준이 테이퍼링으로 연말 쇼핑 시즌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안 린젠 CRT캐피탈 선임투자전략가도 "연방정부의 예산안이나 부채 한도 등이 내년 초에 다시 논의되기 때문에 12월보다는 1월에 통화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