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식기자] 한국사회에서는 오랜 기간 ‘착하면 손해’라는 말이 회자됐습니다.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영악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디서나 인간성보다는 실력이 우선시 됐습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일 좀 한다’ 싶으면 인정해주는 풍조가 팽배했죠.
이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도 강하게 적용되는 듯 합니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창업스토리를 다룬 영화 <잡스>만 보더라도 주인공은 착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무자비하게 직원들을 ‘쪼고(질책하고)’, 생각이 다른 동료에게 독설을 날리곤 하죠.
“어차피 너드(Nerd, 컴퓨터 괴짜)들이 모인 동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코딩(개발) 잘 하는 게 중요하지 성격이 좀 못나도 크게 문제 되겠냐”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착하면 손해’일까요? 개인적으로 만나본 기업 경영자나 임원은 예상 외로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가장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김범석 쿠팡 대표의 인재관인데요.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는 직원을 크게 4가지 형태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착한 데다 성과까지 잘 내는 사람, 착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 성격이 나쁘지만 성과는 잘 내는 사람, 성격이 나쁘면서 성과도 내지 못하는 사람.
당연히 최고의 직원은 첫 번째 사람일 테고, 최악의 직원은 마지막 사람일 것입니다. 다만 ‘착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 ‘성격이 나쁘지만 성과는 잘 내는 사람’ 중 누가 더 회사에 필요할 지 판단하는 것은 꽤 어려워 보입니다.
이에 김 대표는 전자가 훨씬 낫다고 단언합니다. 착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은 ‘물음표’입니다. 언제든지 각성만 한다면 대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격이 나쁘지만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을 ‘독’입니다. 당장 회사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조직문화를 좀먹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전적으로 사람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봉을 올리고, 으리으리한 사옥을 짓곤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원 사이 유대감과 건전한 기업문화입니다. 아무리 일하는 환경이 좋아도 매일 보는 사람들이 싫다면 누가 출근하고 싶을까요?
또 하나 살펴볼 점은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시장 특성상 위기가 자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믿고 힘든 시기를 버텨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벤처투자자는 “심사를 하는 데 창업멤버가 어떤 관계인인지 중점적으로 본다”며 “만약 모래알처럼 금방 무너질 것 같으면 꺼리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사회 전반적으로도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원만한 사회성, 합리주의, 탈권위, 수평관계, 서번트 리더십, 공정성 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성격이 모나다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김 대표의 가치관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쿠팡은 최근 가장 빠르게 성장한 벤처기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회사에게 중요한 것은 사업모델도, 혁신적인 전략도 아니라고 합니다. 조직문화가 전부라고 하는데요. 이걸 들으니 저 역시 하나의 ‘물음표’로서 괜히 힘이 납니다.
◇ 사무실에서 일하는 쿠팡 직원들 (사진=뉴스토마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