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1978년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국내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지 35년만이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0월30일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7일 고려대연각센터빌딩에서 현판식을 열고, 내년 1월까지 위원회 운영에 관한 세부지침을 마련한 뒤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앞으로 공청회와 조사 등을 거쳐 내년 말까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정부권고안을 낼 예정이며,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을 세워 시행할 방침이다.
◇12월17일 서울 중구 고려대연각센터빌딩에서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론화위원회 현판식이 열렸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사용후핵연료에 관한 정부의 기본 방침은 영구 처분. 이는 지하 500m~1000m 깊이의 핵폐기물 처분장을 짓고 방폐물을 묻는 방법이지만, 이론적인 간단함과 달리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
방사능이 누출되지 않는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는 것부터 시설 설계·허가·건설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 무엇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조차도 최근까지 방폐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미온적으로 행동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현재 23기의 원전을 운영 중이고 원전 추가증설까지 추진하고 있지만 지금에야 겨우 방폐물 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그러는 사이 올해 6월 기준으로 전체 폐연료봉은 1722만477개나 돼 국민 3명당 1개꼴인 상황까지 왔다.
이러다 보니 현재 정부는 방폐물을 원전별로 임시 저장한 상태. 민주당 유승희 의원실 자료를 보면 6월 기준 원전별 폐연료봉 저장율은 고리 3호기와 한빛 2호기, 한울 2호기, 월성 4호기가 각각 95%에 달하는 등 10기 원전의 저장율이 80%를 넘는 것으로 나왔다.
◇◇사용후핵연료 외형(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이에 위원회 운영과 앞으로의 움직임에 정부와 원자력 전문가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도 거론됐으며 당시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장관직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책임을 미루지는 않겠다"까지 강조했다.
김정화 산업부 원전환경과장도 "핵폐기물이 매년 700톤 이상 발생해 2016년이면 포화상태"라며 "반드시 관리대책을 세우고 정책형성 때부터 국민의견을 모으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원회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애초 위원회는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등 민·관 전문가 15명을 위원으로 선임했지만, 양이원영 처장과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위원회 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출발부터 삐걱댔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정부는 1990년과 2003년에 충남 태안군 안면도와 전북 부안군을 방폐물 관리부지로 확보하려다 지역 주민과 갈등만 일으킨 채 모두 무산됐다"며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위원회 운영은 기피대상인 핵폐기물 관리대책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과거 갈등을 반복하지 않고 국민 수용성을 높이는 한편 정부의 일방적 정책이 되지 않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위원 명단(자료=산업통상자원부)
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운영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방향과 맞물려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발전설비용량 가운데 원전이 26%에 이를 만큼 원자력은 핵심 전력수단이기 때문에 방폐물 처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임만성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지금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국가의 장기정책과 관련법이 부재하지만 이는 공동체의 문제라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원전산업 초기에는 핵폐기물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앞으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한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상황이 진행되더라도 장기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